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경퀸 Sep 03. 2023

돈 주는 사람과의 여름휴가(하)

이 아니라 달콤이 팬클럽 정모 쯤 되려나. 

주위 친구들 중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그래서인지 애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올 일이 없는데, 오늘 깨달았다. 아, 멍멍이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간다는 것은 3-4살 짜리 어린 아이와 함께 움직인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구나. 

달콤이는 연신 새로운 공간이 신기하다는 듯, 넓지도 좁지도 않은 1.5층을 한동안 계속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산속으로 빨려들어갈 뻔하기도 하고. 계단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너무 높아서 내려가지 못하고 낑낑거리고. 고기굽는 옆으로 쫓아가다가 화상을 입을 뻔도 하고.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지루하긴 커녕 '달콤아!' '안돼!' 를 외치느냐 바빴다. 어이. 고기 빨리 굽지? 예~ 굽고 있습죠. 두 분의 만담이 또 시작 되었다. 소시지라도 먼저 드실래요? 아 너무좋죠! 

따끈하게 구워진 소시지가 종이 그릇 위로 포슬포슬하게 얹어졌다. 지난번에는 소시지 말고 고기만 잔뜩 구워 먹었는데. 따끈한 햇반을 돌려 밥 위에 얹어 먹으니 세상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소시지를 어쩌다 한입 얻어먹은 달콤이가 그 뒤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라고 안 먹는거니? 입에 잔뜩 우물우물 거리며 새침한 달콤이를 한번 쳐다 보았다. 실장님이 뜨거운 불 옆에서 안경까지 벗어 던지며 고기를 열심히 굽고 계셨다. 배가 조금 찼지만 차마 그만..읍.읍... 말할 수 없었다. 저 배불러요.

야들야들한 삼겹살과 누르스름하게 구워진 마늘, 거기에 적절한 쌈장까지 곁들이고 나니 나만의 한입 진수성찬이 펼쳐졌다. 나는 삼겹살도 바짝보다는 널널하게 구운것을 좋아하는데 조금 실패하신 것 같았다. 달콤이는 여전히 돼지는 싫다 말하고 있었고 원장님도 야물딱지게 먹었다. 


쌤 이게 뭐게?(다이어트 보조제를 꺼내며)
오 뭐죠.
이게. 이게말야. 먹은 지방을 다 몸 밖으로 배출해준대.


....원장님 그것은 상술입니다.


나는 원장님의 이런 면을 좋아했다. 한 없이 T같다가도 가끔 저렇게 엉뚱한, 헐랭한 행동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계속 무섭기만(?) 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쫓아다니지는 않았을테지. 빨간 물방울처럼 생긴 봉지 안에는 알약 두 개가 들어가 있었다. 


아저씨 빨리 구워주세요 고기 없다구요.


노룩 고기구워 명령은 당연하게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 실장님은 익숙하다는 듯 예이~라는 추임새와 함께 고기굽기에 박차를 가했다. 예전에도 한번 셋이 조촐한 데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실장님은 고기 굽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제가 구울까요? 아뇨 쌤 가만히 계세요. 하고 찹찹 고기를 구우시는데. 그날은 맛있었는데 오늘은 왜 그러지. 연말에 고깃집 알바 짬바에, 고기 못 굽는 오빠를 가지고 있는 여동생으로서 고기는 잘 굽는 편이다. 실장님은 오늘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이었다. 아마 날씨가 무더운 탓일까.  

마늘은 나만 먹는 요상한 상황에서 구운마늘, 생마늘, 쌈장까지 얹어서 뱀파이어퇴치식 쌈을 싸먹었다. 원장님은 달콤이에게 고기를 주려고 애쓰고 계셨고, 실장님은 여전히 불판 앞.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미색의 푸름. 살갗에 감기는 바람은 서늘한 가을. 손에 들린 병맥주의 찬 기운이 바람으로 옮겨탄 것 같이 느껴졌다.


배부르다 
진짜 배부르다

라면까지 야물딱지게 먹어치운(정말 먹는게 아니라 먹어 치운 느낌이었다. 1개는 모자랄 것 같다고 2개를 끓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는 먹는것에 진심이구나.)뒤 여기 저기서 어우 배불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삼겹살을 먹고, 소갈비살을 먹는 도중부터 배가 슬슬 불러왔다. 그 즈음에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는데 MSG가 점철되어 있는 맛있는 그맛! 한입 떠 먹자마자 햇반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었는지 예전엔 고기만 먹어도 배 불렀는데, 이제는 고기만 먹어서는 출출한 감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밥에, 된찌에, 이제는 라면까지 먹다 보니 오늘 먹을 건 다 먹었구나 싶었다. 거기에 맥주까지! 이정도면 거의 회식을 넘어간 돼지파티 아입니까.(라기엔 지난번 셋의 데이트는 6시간 내내 먹기만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이정도는 양반이지) 

계속 앉아 있다가 일어나니 배가 무거워졌다. 이제 치우죠. 어, 이거 다 치워야해요? 그럼요. 분리수거 해야해요. 옛부터 힘쓰는 일은 시다가 했다. 내 월급은 원장님의 통장으로부터 나온다. 오너이자 돈 주는 사람이자 강사계의 선배와의 여름휴가 마지막날을 보냈다. 이제 몇 개월만 있으면 1년을 꽉꽉 채워서 본 사이가 된다. 2년뒤, 3년뒤에 나는 돈을 여전히 받고만 있을 사람일까. 


엉경퀸: 원장님, 저 내일(태풍 온다고 한 날)캐리비안 베이 가요 좋겠죠? 후후 
원장님: 흠(실장님을 쳐다보며) 우리 화목 강사 다시 구해야겠다. 
실장님: 그래 언제 공고 올리면 될까. 쌤 내일 그러면 실종된다는거지?
엉경퀸: 이봐요들. 그렇게 쉽게 사람을 내친다고요?

원장/실장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하게도 지난 이상한 원장을 제외한 다른 센터들에서도 돈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꽤나 괜찮은 편이다. 사실 안 괜찮을게 뭐가 있냐만은, 괜찮지 않은 관계가 더 많으니까. 이 원장님을 만난 것이 어찌 보면 행운이었고, 지금까지도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직장상사, 또는 대표와 여름휴가를 보냈다고 하면 다들 대체 왜 너는 거기에 끼어 있냐고 묻는다. 단순히 내 직업상의 특징이 아니라, 지금껏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좋은, 여름휴가였다.

작가의 이전글 돈 주는 사람과의 여름휴가(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