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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사춘기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사춘기 때는 모든 게 싫고, 모든 게 남 탓이고 특히 그 탓은 가까운 어른들을 향하는데 내가 아픈 이유를 되짚어보니 그렇다. 나는 요즘 나를 둘러싼 어른들에게 화가 난다. 서른아홉에 어른을 탓하게 될 줄이야.
시작은 엄마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다. 여느 신파극처럼, 유리 멘털인 우리 엄마는 ‘하필이면’ 힘든 일들을 많이 거쳐야 했다. 시쳇말로 전형적인 K-장녀인 나는 그런 엄마를 꽤 어릴 때부터 위로해왔다. 물론 중학생 때 사춘기를 심하게 거치긴 했지만 되려 그 시간을 보낸 덕에 나는 빨리 제 자리를 찾았고, 부모님이 걱정할만한 일은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집에서 누구보다 밝은 아이였다.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된 이십 대 중반까지 두 분 사이를 중재하는 딸 역할을 하며 살았다.
바깥에서도 나는 지나치게 밝은 축에 속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역시 밝은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나도 모르게 맞추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당시 장교 복무 중이던 남편과 춘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나는 집순이가 되었다. 물론 여행은 별개였는데, 여건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여행 역시 혼자 떠난 적이 더 많다.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나를 보면서 가장 놀란 사람은 남편. 중학생 때부터 나를 봐온 남편도 사람들 속 내 모습에 더 익숙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던 거다. 남편은 내가 매일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다닐 줄 알았단다. 사실 나 역시 남편이 그 사실을 지적해주기 전까지는 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나는 결혼 후 해방감 같은 걸 느낀 것 같다.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을 염려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배려받으며 사랑받는 생활에 안정감을 느꼈다. 게다가 보통 결혼을 하면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나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해방감을 만끽하는 시간들이 지나자 지금껏 나도 모르게 눌러왔던 감정과 생각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에 터져 나오고 끝나면 참 좋았을 텐데 결혼 후 11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정들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나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정적으로 크게 폭발했다. 시작은 또 엄마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서였다. 몇 년 전 엄마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 삶을 시작했고 나는 드디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한동안은 내가 기대했던 평탄한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처음으로 부담 없이 친정에 가는 딸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또다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졌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에 내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루틴처럼 내가 엄마를 위로하는 날들이 잦아졌고, 엄마의 우울이 극에 달하게 된 ‘그날’ 나는 엄마를 찾아갔다. 축 쳐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면서 익숙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두려움과 분노. 하지만 나는 역시나 습관처럼, 내 감정을 뒤로 미룬 채 능숙하게 엄마를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이 날 나는 한 가지 낯선 경험을 했다. 입으로는 위로하는 동시에, 마치 정면에서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는 듯 내 마음이 보이는 경험을 말이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입과 표정은 끝까지 엄마를 위로했다. 그런 자신이 이 날만큼 선명하게 느껴진 날은 없었다. 결국 나는 이 날 엄마의 모습이 나아 보일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손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맘 놓고 내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 후로 몇 달간 나는 그야말로 우울증 환자처럼 지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사이사이 쉼 없이 우울했다. 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지면서 그간 내가 살아온 삶이 억울해졌다.
사실 엄마로 인해 힘들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육아를 시작하고 몇 해 동안 나는 몇 번 비슷한 이유로 아파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소위 표현이 서툰 가정에서 자란 내가 내 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걸 느끼면서부터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목구멍에서 입 밖으로 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목구멍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어서 그 말을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이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그걸 해내기까지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노력치고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내가 그래도 엄마보다 낫구나 생각하면서도, 받지 못한 걸 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낄 때마다 나는 힘들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노력해도 죽어도 되지 않는 게 있다. 불안하고 힘든 마음을 참아내는 일.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처음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엄마가 가엽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사랑을 주지 않아서, 사랑해주기보다 책임감부터 떠넘겨주어서,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엄마에게 마치 첫째처럼 형제들 뒤치다꺼리를 하게 만들어서 엄마가 저렇게 된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내가 하나씩, 내가 받지 못한 걸 해내면서부터 억울함이 커졌다. 노력하면 되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런 노력을 내게 하지 않았을까. 왜 엄마는 항상 내게 ‘난 나이 먹어서 바뀌지 못하니까 네가 바꿔’라고 했을까. 왜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무게를 느끼게 만들었을까. 왜 엄마는 내가 태생이 엄마와 달라서 괜찮다는 말을 하며 자기의 우울을 당연시하고 내 아픔을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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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불행이 남 탓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최대한 남이 아닌 내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내 마음에 집중해서 답을 찾다 보면 확실히 분노가 잦아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노력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마음 놓고 힘들어하도록 나를 그저 두기로 했다.
그렇게 힘든 마음과 싸우던 중 이런 내 사정을 아는, 내가 존경하는 한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언제나처럼 차분히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게 힘들고 억울하겠다고. 그리고 유난히 내 주변에 어른이들이 많다고 말이다. 언니의 이 말은 나를 위로해줌과 동시에 한 가지 다짐에 이르게 했다.
지금 내가 그나마 버티더라도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다짐은 바로, 이 마음을 고스란히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는 엄마만은 되지 말자는 것. 어쩌면 내 마음이 힘든 이유는,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받아 온 온기가 차가움을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토록 힘든 것은 어쩌면, 문득 돌아보니 기대고 싶을 만한 온전한 ‘온기’가 보이지 않아서 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세상으로 나가 차가움을 맞닥뜨릴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는 분명한 온기가 되어 주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이 아픔을 버틸 용기가 결국 내 아이를 바라보며 생긴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답도 찾지 못했다. 어쩔 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오거나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힘들다. 어느 날은 우울하고, 어느 순간엔 자신감으로 넘치다가, 또 어느 밤에 깊은 우울감을 한숨에 흘려보내며 침대에 눕는다. 엄마 유년의 결핍이 엄마 탓은 아니었으니 나도 그들을 탓하기보다 이해해주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엄마의 몫은 엄마에게 주고 내 마음을 위로하며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살며, 여행하며 배운 바로는 그런 삶들과 어우러져 보듬고 살아가는 것인데 지금은 다른 삶보다 내 삶을 먼저 돌보아야 하겠다는 생각뿐. 나는 일단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했다. 위로도, 반성도, 자책도, 원망도 일단은 흐르는 삶에 던져 두기로.
인생은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도 흘러갈 테니. 멈추지만 말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