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Road Movie 1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부디 안녕하기를

2010. 스페인

by 박작가 Jul 25. 2023
아래로



-

 다시 마드리드, MJ의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일주일쯤. 일정을 넉넉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여행의 끝은 매번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아무 계획 없이 와서 되려 쉽게 일정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나는 남은 일주일 동안 꽤 여러 곳을 다녔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든 김밥을 싸들고 문득 야경을 보러 살라망카에 가거나, 뒷산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높은 산에 약수를 뜨러 다녀오는 등 마치 이벤트가 몰린 일상처럼 남은 날들을 보냈다.


 여행이 한창일 때는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며칠은 맑고 화창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심술궂은 마음을 갖느니 맑은 하늘 아래 마드리드까지 보고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 타일러가며 나는 마드리드를 열심히도 걸었다. 또한 MJ와 몇 날 밤을 지새우고도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쫓기듯 나누느라 바빴다. 시내 구경 중에도, 공원 산책 길에도, 때에 맞춰 식사를 할 때에도 우리의 대화가 중심이고 그것들은 배경인 양 쉼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십 대 후반의 정신없는 마음 그대로 두서없이, 그러나 즐겁게.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이전까지 대부분 혼자 여행해 온 나는 크게 깨닫지 못했는데, 이번 여정 중에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마지막까지 내가 보면 좋아할 것, 내가 먹으면 좋아할 것들을 떠올리며 함께해 주는 MJ 덕분에 나는 여행의 끝까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풍성한 경험을 하고 돌아갈 수 있음에 온 마음으로 감동했다. 최대한 여행하고 있는 그곳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어 하는 내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노력해 주었는지 모른다. 확신컨대 이 여행은,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들음으로써 단순한 경험을 넘어 나의 지경을 넓힌 여정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건, 호주에서 돌아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다시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던 이유가 무엇인지 내 내면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거다. 괘념치 말자던 타인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뿐 아니라 듣기 싫었던 이유는, 그러한 요구나 기대들에 만족시키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화가 불안함의 절벽으로 나를 몰아갔기 때문이라는 걸 안거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알아버렸으니 이제 알게 된 대로 살 일만 남은 미래가 두렵기도 했지만, 이유도 모른 채 떨고만 있던 태도와는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


  2년 뒤를 기약하며 떠나 안녕을 고하는 마음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서로, 부디 안녕하기를!


                    

이전 12화 비바람 속에 색을 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