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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12. 2023

성자필쇠는 정말 '필'일 수밖에 없을까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시오노 나나미

...베네치아는 육체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성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 그(괴테)는 이런 말도 써 남겼다. ... 확실히 베네치아는 공화국의 국민 모두의 노력이 낳은 산물이다. 베네치아공화국만큼 반영웅으로 일관한 나라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중세의 '이코노믹 애니멀'이었다. ... 베네치아공화국은 '처음에 장사가 있었나니'로 1천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이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이상주의가 실제로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이며,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가장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기 때문이다.

 이상주의자라고 자인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방법상의 잘못을 깨달을 만큼 현명하지는 않지만, 그늘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나 그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예상했던 효과를 조금도 낳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처럼 하지 않는 현실주의자들 미 워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주의자가 미움을 받는 것은 숙명이라고나 할 수밖에 없다. 이상주의자는 종종 자기 편인 현실주의자보다도 적인 이상주의자를 사랑하게 마련이다."


독점의 폐해는 그것이 경제적인 필요 이상으로 확대됨으로써 사회의 상하유동이 둔화되고 빈부의 차이가 고정화되어 결국은 그 사회 자체가 가지는 활력 또는 생명력이라 할 힘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어떤 개혁도 어떤 복지시책도 효과가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베네치아가 도시국가로서 어떠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책을 읽었다. 로마제국 역사와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에 빠져 서양사를 읽기 시작한 터라 <바다의 도시 이야기> 역시 역사의 수순에 따라 읽었다고 하는 게 맞다. 아주 조금, 그간 다른 책에서 그녀가 왜 베네치아를 강조했으며 이렇게 따로 책까지 써냈을까 궁금했던 정도.


 그런데 읽고 나니 도대체 왜 우리는 베네치아라는 도시국가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가 싶어 졌을 만큼 내게 임팩트가 컸다. 그 이유는 작가가 너무나도 잘 설명해 두었으니 차치하고, 읽는 내내 그 긍정적인 구조와 사람들이 지금 당장 내 현실에 있었으면 싶었을 정도로 나는 그 옛날 베네치아 시민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아무리 성자필쇠라지만 시대의 흐름에 하릴없이 무너져 버린 그 작고 단단한 도시국가가 가여웠다.





...제1장을 썼던 당시부터 일관해서 내 저작 태도의 근저가 되어온 생각은 '역사는 오락이다'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 고대 로마의 호라티우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재미있고 도움 되는 책이 양서다."

<독자 여러분께> 중에서


Q: <르네상스의 여인들>과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의 '창작 뒷 이야기'는 듣고 있는 나도 무심코 웃어버릴 정도였는데, <바다의 도시 이야기> 하권의 '뒷이야기'는 왠지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시종일관한 것 같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이유가 있을까요.

A: (웃음)...<르네상스의 여인들>이나 <체사레 보르자>나 <신의 대리인>을 쓸 당시의 나는 젊고 독신에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방인인 외국인이었어요. 속 편하고 걱정거리도 없고, 그래서 무책임하고, 다소는 경솔한 인생을 즐기고 있었죠.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탈리아 사회와도 깊은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쓴 것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이고, 그 후에 쓴 몇몇 작품이에요. '뒷이야기'에 흐르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어쩔 수 없어요. 시오노 나나미도 어른이 된 거겠죠. 더이상 '스펜시에라타', 곧 '속 편한 여자'가 아니게 된 거예요.

<창작 뒷이야기> 중에서



 작가를 꿈꾸는 치로서 그녀의 이 답변은 내 마음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요컨대 작가도 사람이다. 역사와 나, 현실과 나를 떼어 두어 살고 생각하거나 가치를 정립해 글을 써낼 수 없는거다. 최근에 더더욱 '속 편한 여자'가 아니게 된 나는 앞으로 삶과 여행을 글에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까.


 아무튼,

 역사학자가 아닌 오락으로 역사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 읽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은 외치지 못할 것 같다. 지적으로 이토록 즐겁게 파고들게끔 만드는 그녀의 힘을 끊어낼 재간이 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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