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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08. 2019

엄마 밥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 박완서 외 12명

...입을 다물고 묵묵히 파를 썰거나 마늘을 찧다보면 수십 년 재래식 부엌에서 그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끊임없이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내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예전에는 그냥 한순간의 어머니였는데 이제는 그 재래식 부엌에서 보낸 어머니의 전 생애가 떠오른다.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는 일로 전 생애를 보내신 어머니. 그래서 불행했다고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지만, 그래서 딸인 나조차도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음식 만들기가 이제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희생으로 다가와 마음이 복받치는 것이다. 간을 맞추다가 솥뚜껑을 열다가 군불을 때다가 얼마나 숱하게 눈물을 훔쳐내셨을까. 어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고구마순을 다듬거나 멸치 똥을 갈라내시던 그 재래식 부엌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오로지 어머니만을 위해 음식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어머니가 더 늙기 전에.


-신경숙 <어머니를 위하여’ 중에서


음식에는 수많은 추억과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담길 수 있다는 걸 참 잘 아는 누군가 계획했을 수필집.


각자의 기억에 출중한 무언가로 기억되어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종류와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한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엄마의 음식에 대한 신경숙 작가의 기억은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간간이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지금 내 상황과 적잖이 닮아,

자꾸만 우리 엄마 음식을 그리며 읽느라 속이 허했다.


아무튼.

입덧 중이라 의도치 않게 홀대중인 많은 음식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려주어 고마웠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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