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by 파치






엄마. 어디야?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잔뜩 가라앉고 싶은 날인데 이런 날일수록 사람들과의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어서 다 취소했어. 그러면서도 무서웠어. 이 이후로 관계가 끊어지면 어쩌나, 다시는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나.......

있지 엄마. 사는 게 뭐야?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야?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정말로 있기는 한 거야?

난 내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서 이러고 있는지도 몰라.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을 때 엄마는 그랬지.
그럼 그때 학교를 간호학과로 보낼걸.......

아냐 엄마. 그럼 적응 못했을 거야. 아 아니다 엄마. 사실 모르겠어. 내가 잘할 줄 알았던 일들도 못하는 마당에,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중간은 해냈을지 어떻게 알겠어.

엄마. 그냥 사는 게 재미가 없어. 앞으론 재밌는 일들이 벌어질까? 십 년 지나면 그럴까? 이십 년 지나면? 난 모르겠어. 자신 없어. 엄마는 어땠어? 영이 오빠 죽었을 때 있잖아....... 그냥 다 다 다 떼놓고 말이야. 가족이나, 책임감이나, 그런 가타부타 피할 수 없는 일들 있잖아. 그런 걸 다 생각하지 않았을 때 말이야. 부러웠다. 난 그랬어.

한창 재미가 없다가, 조금 더 힘내서 살아볼까 싶다가, 어느 날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그냥 죽은 것처럼 살고 싶다.

아, 책 내서 돈 벌고 싶다. 그러자 엄마는 물었지. 써둔 게 있어?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물어볼 때 엄마 눈은 봐도 봐도 귀여워. 웃겨. 괜히 장난치고 싶어져. 둥그렇게 눈을 들어 올리잖아. 그럼 나는 깔깔대며, 아니, 엄마, 그냥 우연히 잘 되고 싶어.

엄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심이야. 우연히 잘 되고 싶어. 크게 노력하지 않고 일이 술술 풀렸으면 좋겠어. 내게 주어진 환경들을 박차고 어디론가 갈 힘이 내겐 없어. 고작 한 달 하는 유럽여행도 마지막엔 울면서 다녔잖아. 힘들어서. 아마 이민을 갈 일도, 전국 팔도 돌아다니면서 살 일도 없겠지. 꿈을 찾아 상경할 일도,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 노랠 부르는 제주도에도, 없겠지. 난 거기에 없을 거야.

살아내야 할 날이 아직도 구만 리인데 이렇게 지쳐서 어쩌자는 걸까.......

잘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잖아. 그치만 누가 말했던 것처럼 내 재능은 도망치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쌓아 올린 걸 아까워하지 않고 던져버리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언젠가 포기하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주 적어진 세계에서는 날 필요로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도 싶어.

자랑은 아니지만 어떤 밤에는 누워서 한 숨도 못 자기도 해. 동이 터오는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누워서 울기밖에 안 하는 거야. 그래도 그럴 때는 이상한 동질감이 들어. 나와 연결된 누군가를 떠올리게 돼.

어차피 엄마도 지금 못 자고 있을 거잖아.
80km 떨어져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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