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것 같은데.
어, 그런가?
그와 나는 동시에 고갤 들어 가로등 쪽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작은 빗방울이 톡, 톡 하고 닿을 정도의 아주 잠깐의 찰나였다. 이미 언덕을 반 이상 내려온 상태였다. 들고 있던 짐을 내게 주섬주섬 안겨주고 그는 그 언덕을 다시 올랐다. 뒷모습이 너무 영차영차 힘내는 사람의 모습이어서, 천천히 가아, 하고 그의 뒤통수에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우산을 들고 뛰어온 그에게서 약간의 살 냄새가 번졌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을까? 알 수 없다. 몰아쉬는 숨이 가빠보였다. 숨 차?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조금.
그렇게 시작된 빗방울은 어느새 빗줄기로 변해 신발 앞 코를 토독거리며 적시기 시작한다. 조금씩 바람이 불고, 바람에 비가 이리저리 날아든다. 금세 앞머리가 젖어든다.
늘 걷는 길이다. 벌써 이렇게 다닌지도 반년. 좋아하는 사람들의 궤적들을 따라 어쩌다 보니 이사 온 동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산책할 때도 걷는 길들. 낯선 길을 걸을 때면 너 어디 가? 나 너 따라가는데? 식의 꽁트나 찍고 있는 둘도 익숙한 발걸음을 무의식적으로 옮긴다. 걸어간다.
있지, 비 많이 왔으면 좋겠다.
이거 세 시간짜리 비래.
아, 뭐야.
비 많이 왔으면 좋겠어?
응. 먼지 가시게.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들이 짧게 반긴다. 대충 신발을 벗어둔 채로 우주와 초승이를, 그는 참외와 살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미간을 꾹꾹 쓸어 넘기면 그릉대는 소리와 함께 눈이 감긴다.
여섯이 어지르고 사는 집. 정리를 짧게 도와준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이, 빗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비 많이 오는데 택시 탈래? 아냐, 코 앞인데. 그가 매번 코 앞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일부러 코웃음을 친다. 같이 지내자고 자주 말하고, 자주 거절당한 탓이다. 이렇게 먼 코 앞이 어딨어. 걸어서 십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여도 너무 멀다구요. 30초 거리에 살면 좋잖아. 아님 따로 방 쓰면 좋잖아. 누가 한 침대 쓰쟤? 애매한 낮잠을 잔 탓에 나는 여전히 퉁퉁이 모드다. 그는 고양이를 둥가둥가 안아주는데 온 신경이 가있다. 결국 나도 고양이의 뺨을 어루만지는 데 집중한다.
그가 외투를 챙겨 입고 나가기 전, 베란다 창문을 닫아줄지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한다. 비 오는 게 내심 좋아서다. 자정 넘은 시각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래, 그럼. 간결한 대답들이 오간다.
현관 께에서 우리는 짧은 포옹을 나눈다. 쉬고 있으라는 그의 말에 곧장 침대에 누웠지만, 비가 그칠 때까지 결국 한 시간 반을 뒤척인다.
빗소리가 그치니 윗집 사람의 코 고는 소음이 들려온다. 저 이의 소리는 맨바닥에 코를 묻고 자는 것 같이 건물의 빈 부분을 온통 울린다. 어느 날은 저 소음을 외면하고자 이불을 꼭 껴안기도 했다가, 가끔 듣는 백색소음 어플의 음량을 점점 높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저 이의 수면이 편안한 궤도에 들어서기를 절실히 바랄 뿐이다. 잠깐 잠잠해진 사이를 틈타 다시 눈을 감는다. 살짝 귀를 막는다. 저 멀리서 젖은 노면을 가로지르는 차륜의 소리가 감은 눈 틈 사이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