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2020.01)

by 파치



평일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토요일의 낮. 출근 준비는 죄다 미뤄놓고 아침부터 세탁을 하고 먼지를 잔뜩 털어 건조대에 넣어놓았다. 잔뜩 드는 햇빛을 잠깐 감상한다.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청소 행진이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출근 준비는 삼십 분 안쪽으로 마무리된다.

주말은 주말이구나, 명동 쪽 큰길에는 온통 주차한 차들이 잔뜩이다. 이사한 이후로 200번 버스가 명동을 거치지 않고 출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1월 1일 자 개편 이후로 다시 명동 중앙시장 공지천을 다 거쳐가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난 약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시간 동안은 (출근 시간이 무려 십분 이상 늘었다) 창문에 머리를 대고 버스의 흔들림을 느끼기로 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책이 오늘의 주머니책이다.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책들이 외출의 친구들이다. 며칠째 가방을 챙겨 다니지 않았다. 가방이 없으면 외출하지 못하던 지난 이십여 년 간의 역사가 비로소 종결된 느낌이 마구 든다. 화장하던 시절에는 화장품 파우치. 평소에는 가방 모양을 잡아줄 잡지와 어디서든 꺼낼 수 있는 가벼운 책, 빗, 고양이 털을 뗄 돌돌이, 물티슈, 과자와 사탕류, 가글, 어떨 때는 더 자질구레하게, 상비약에 립밤에 핸드크림에 손톱깎이에. 그러니까 그냥 길거리에서 뭘 쏟거나 누가 갑자기 아프더라도 가방을 뒤져 필요한 물건을 내밀 준비를, 여성들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내가 고르는 글들은 요즘의 우리가 얘기하는 결들의 글이어서, 내가 특히 이런 글을 좋아하는 건지, 이런 글들이 주류이고 멋진 글이어서 내가 이런 글을 좋아한다 느끼는 건지, 아니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이런 글들을 좋아하고 즐기기에 그들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뒤따르는 건지 아니면 나열한 전체의 이유 때문인지!

내가 동경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가진 언어, 문장과 색채,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이 드러나는 말과 글, 손짓과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어딘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런 대상은 늘 여성이었다. 강인하고 끊임없이 달리며 언제라도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이들. 그런 범주로 남성을 동경한 적이 있었나? 없는 것 같다. 있더라도 아주 과거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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