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임 쓰담쓰담
벌써 세탁기에만 세 번째 돌아간 에어팟 양쪽 유닛들은 방바닥에서 사흘째 굴러다니던 중이었다. 그래도 이번은 오히려 지난번에 비해 다행일지도 모르는 게, 에어팟 유닛을 건조기를 열자마자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기는 틀림없이 제거됐을 테다. 에어팟으로 통화를 시도하면 다들 내가 저 멀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고들 했었는데. 내일 아침에 통화할 때는 어떤지 물어봐야지.
에어팟 케이스는 엉뚱한 가방에 들어있었는데, 도대체 왜 매번 에어팟 유닛을 대충 뒷주머니에 욱여넣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의 1/24쯤을 휴대폰과 지갑 찾는데 쓰는 사람인데 어련할까? 이마저도 우렁선유의 도움으로 굴러다니던 유닛이 드디어 케이스에 쏙 들어가게 됐다. 나는 퇴근하고 기절해있었음.
아무튼 이어팟과 에어팟을 손에 잡히는 대로 가지고 다니면서(그마저도 어떨 때에는 두고 외출해 주변 분들의 이어폰을 빌리기도. 빌리지 마. 그분은 그럼 마음으로 듣니) 이어팟은 이어팟대로 충전 안 해도 돼서, 에어팟은 에어팟대로 무선이어서, 요리조리 감탄하는 난리법석의 10월은 흘러흘러흘러가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주제로 정해졌을 때, 오히려 글을 쓰기 좋을 줄 알았다. 깊게는 아니지만 얕은 음악 디깅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즐겨 듣는 음악이 있고, 플레이리스트의 톤과 밸런스를 조절해서 정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역시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다... 뭐 오늘도 그런 얘깁니다.
어찌 됐거나 벌써 세 번이나 세탁된 에어팟 친구는 딱히 음질이 무너진다는 감은 느껴지지 않는데, 왠지 입도 막입인 내가 막귀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뭉개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글거리는 것 같기도 한데, 그냥 부드럽게 문지른 거라고 생각하자.
이어폰을 오래 끼면 귀가 아프기도 하고, 귓구멍이 작아 커널형 아니면 고정도 잘 안 되는 탓에, 스무 살 넘어 만난 애플 이어팟들의 형태가 귀에 들어맞았을 때 조금 좋아했었지. 아무튼 뚜벅인생 대중교통 탈 때나 걸을 때 말고는 이어폰을 잘 안 끼는 사람으로서 00:41에 침대에 누워서 에어팟을 끼고 있으니 새롭군요.
고3 때는 도대체 밤에 잠을 이루질 못해서 매일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주야장천 들었었다. 새벽 몇 시를 넘어가니 편성이 끝났는지 방송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 스위치를 끈 것처럼. 치이— 미세한 떨림의 소리. 감은 눈 앞에 아른거리는 천장의 별 스티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밝아오면 이어폰이 목에 휘감겨있었다. 켁켁
맘마미아, 베이비 드라이버, 싱 스트리트의 트랙들을 신나게 발 굴러가며 들었던 때. 사실 영화가 나의 마음을 온통 채우지는 못했어도 음악은 온통 채우고도 흘러 몇 주씩 귓가에서 맴돈다. Another day of sun, Remember me, My favorite things(짜증이 치솟고 사소한 실수가 잦을 때 가사를 되뇌면 적잖은 도움이 된다), Perhaps love, Reflection, 영화 버전의 Think of me, 아, 과몰입 대마왕은 다시 만난 세계도 이대 시위 장면의 버전으로 떠올리고 자주 울컥하곤 하고. 가볍게 걷고 싶을 때는 You’ve got a friend in me를 한곡 반복 재생!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나의 어떤 구석구석을 쉽게 점령하는 이유가 뭘까? 이미 움직이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음악이라서 그런 걸까? 여타 음악들은 이미지를 새로 씌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고, 즐겨 듣던 계절을 돌이키느라 과거의 기억에 휩싸이게 될 때가 많아. 그렇지만 Be our guest를 들을 때는 화려한 서커스에 가까운 춤과 노래와 벨의 표정만 생각나지... 미녀와 야수의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해도 불안하거나 답답하지 않고... 행복으로 점철된 완결을 알기 때문일까? 완전한 몰입만이 해방일까?
아, 유행 싫고 대세 싫고 탑 100 싫다고 아무리 말해도 내 취향은 독립음악이나 클래식 신보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인 시선임을 그만 인정하자. 팝 좋아요. 엄청 좋은 스피커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지직지직. 바이닐 콜렉터들 부러워요. 그치만 턴테이블 있어도 안 쓸 것 같아요.
10월은 어찌나 완연한 가을인지. 50년 뒤의 10월에도 이 음악들을 듣고 있을까? 어떤 형태로 들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음악들을 투명도 30 정도로 내 인생의 배경 삼아서 살 수 있을까? 그러려면 마음을 매만지는 음악들을 듣고 부르고 떠올리자. 멜로디의 음표를 콕콕 찍자. 쉼표와 리듬을 붙여 허밍하자. 의지하고 빚지고 기대어 살자. 어찌 됐건 죽지 말고 살아내자. 마음에 소망을 갖자. 에어팟은 좀 그만 잃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