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나열
구형 프라이드, 베타보다는 웨건, 리스토어보다는 순정 상태를 유지한 깔끔한 친구들. 마티즈 는 연두색, 피아트는 500X. 아, 귀여운 외형의 차가 쑤욱 커진 모양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막 둥당거리는지요. 스쿠터는 더 확고한 취향. 삼륜! 혼다의 자이로 X.
작업실의 피아노는 피치가 떨어지는 건반들이 많은 마흔 살. 삼익도 영창도 야마하도 아닌데 왜 끌어안고 있냐고 물어보면은, 할 말 없지만요. 그래도 굳이 끌리는 쪽을 말하자면 광이 나지 않는 작은 업라이트가 좋아요. 디테일에 과함이 없이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들에 마음이 가요.
오래된 골목과 건물, 패턴과 창틀을 골똘히 볼 때면 왜 시간이 지나고서야 더 귀해지는 것들이 많은지 골몰하게 돼요.
나는 내가 좋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아요. 그게 돈이 그다지 안 될 일들이란 것마저도 잘 알아서 가끔은 조금 짜증나요.
어딜 꾸밀 때도 빈티지한 디자인들이 좋아요. 애정과 시간을 쏟아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나이테를 가진 가구와 소품과 쏟아지는 빛들. 조명들. 인더스트리얼보다는 다정하고 편안한 색과 질감과 모양들이 배치된 형태들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어요.
과감한 도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패턴이 과한 옷들은 다 중고로 팔아버렸어요.
식물들은 머리가 길고 치렁치렁한 친구들을 좋아해. 잎과 뿌리가 푹 젖도록 물을 좋아하는 아이비들은 왜 이렇게 순하고 사랑스러울까요? 나의 치렁치렁 친구들의 이름은 마삭줄, 립살리스, 스파이더 호야. 나보다 키가 클 때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쉽게 읽히는 글들을, 음악이 소름 돋게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나의 동물 친구 가족들을, 눈이 시리도록 반짝이거나 아주 거대한 그림, 아냐, 어떨 때는 수화의 그림이, 아냐, 누가 좋은 걸 보여주면 난 그게 다 좋아요. 뮤지컬도 연극도 그래요. 연주회도 텃밭 가꾸기도, 그릇 만들기도 악기를 연주하는 일도, 손을 잡고 이끌어 줘요. 이런 게 있어, 이렇게나 좋아,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세요. 모르고 살았던 세계와 아주 다른 양상일 거예요. 그럼 저는 퐁당퐁당한 삶의 기쁨과 소망을 풍선 마냥 껴안고 여러분의 세계로 놀러 갈 거예요.
아, 양말은 오트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