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4월

by 파치



휴일의 아침을 깨운 건 한글이다. 보통 진동 모드로 설정해두어 평상시에는 전화를 영 못 받다가, 잠이 들었을 때는 귀신같이 전화 진동 소리에 깬다. 이불 한복판 어딘가에 있을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아 이름만 언뜻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다. 어 언니.

세미야. 너 자니? 미안하다. 내가 어쩌구 저쩌구.......
아냐 언니. 괜찮아. 왜?

이쪽으로 배달을 오면서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한글이. 잠이 덜 깬 나는 나가서 언니 얼굴을 볼지 아주 잠깐 동안 고민한다. 그러다 다시 몸을 옹송그린다. 아직은 잠이 너무 달콤한 상태다.

언니는 오늘 가게가 한가하고 아직 점심을 못 먹었고 돌보던 고양이가 영역을 떠난 건지 어디로 간 건지 아픈 건지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통화할 때 나보다 많이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즉각적으로 진지하게 대답하는 게 내 일이 된다. 언니가 전화를 걸 때에는 어쨌거나 내게 얘기할 내용이 일정량 있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아무렇게나 얘기를 일삼고 후회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다.

언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도 절반은 그렇다. 절반의 나는 몰라, 진짜, 어떻게든 되겠지 의 마음가짐 그뿐이다. 언니는 내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의 레드오션과 블루오션 모먼트에 관해 얘기하고, 언니가 세운 원대한 계획에 짜바리 같은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로 마무리된다. 세미야, 너는 내 계획에 있어. 일단 네가 블로그를 시작해야 해. 널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해.

너는 내 계획에 있어. 세상에. 종교에 과하게 심취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갑작스럽게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네가 내 계획 안에 있다....... 얼마나 누군가를 일어나게 하는 문장인가. 그런 탓에 이번 연휴부터 시작해보겠다고 의지 넘치게 대답해버리고야 만 것이다.

누군가 머릿속에서 박수라도 친 듯 파열음이 울리고, 잠은 달아나버리고야 만다. 옹송그렸던 몸을 쭉 피고 발 끝까지 기지개를 펴낸다. 온몸의 관절 구석에서 소음을 일으키며 켜지는 오래된 기계처럼 몸을 삐그덕거린다. 그리고는 메모장을 켜서 여태까지 이 글의 초고를 쓰고, 빨래를 돌리고,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너무 부지런하다는 자각을 할 쯔음 다시 누워 천천히 그 대화를 음미한다.

잠깐의 대화. 어쩌면 하루하루 정체되어 고여있는 나를 그다음 날로 데리고 가는 건 나 자신이 아닐 테다. 단 오 분 동안의 대화가 오늘 아침의 킥이 된 것처럼.

그나저나 귀가 타는 듯이 간지럽다. 개는 내 발바닥을 자꾸 깨물고 있다. 다시 일어나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