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흘렀다. 이번 달까지 벌써 스무 번의 월세를 냈다. 육백 만원. 한 번도 작은 방이 아닌 곳에서 잔 적이 없었는데. 오늘로 두 번째, 거실에 이불을 펼치고 잠이 든다. 어제는 티브이를 틀어 유튜브에 백색 소음을 검색한 뒤 다섯 시간짜리 영상을 찾아 틀어놨었고, 오늘은 아직 로봇 청소기 로로가 발 끝을 톡톡 치며 청소 중이다. 방금 청소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기분. 고양이들 말고 움직이는 또 다른 애. 로로의 소음이 멈추고 나니 아까 재생해놓은 백색 소음의 빗소리가 들려온다.
비가 세차게 내리면 베란다와 복도 창문으로 들이치는 사운드가 맹렬하게 울린다. 폭풍우를 몰고 온 장마 전선의 반경 안에서 우리 집이 날아가거나 부서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하루에 만 원 정도씩 내고 살고 있는 셈이다.
침대가 아닌 대충 펴고 누운 잠자리 옆 책상에 놓인 책들은 아직 초면이다. 리커버로 나온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그리고 궁금했던 사하맨션. 책을 사 오면 가방 속에. 베개 옆에, 눕는 발치에, 화장대에, 부적 놓듯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버릇이 됐다.
밤이 오면 다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고양이들은 내 손이 닿는 곳에, 책들은 물이 닿지 않는 곳에, 누가 내 동선을 읽는 게 두려워 오랜 시간 계속 켜놓고 있던 거실의 불을 끄고 눕는다. 웅크린다. 뒤척이다 다리를 쭉 뻗는다. 몸을 일으켜 머리맡의 물을 마신다. 에어컨을 잠깐 켠다. 잠을 통 이루지 못하는 고양이의 이마를 쓸어 넘긴다.
아직 잠이 오지 않으니 팔이 저리지 않을 때까지만 책을 읽기로 한다. 쇼코의 미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변에도 많지. 2017년 독서모임 때 참여했던 언니가 소개했던 문장.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돌아오는 목요일은 나와 선유의 기념일이다. 선유가 말했다. 그동안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나는 생각했다. 영영 다시 안 볼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 같군. 그렇지만 그의 그 말이 진심임을 안다. 뭔가 미심쩍은 표현일 때도 있지만. 행복하자, 라는 말을 일 년에 두 번 정도 손을 꼭 고쳐 잡으며 하는 사람.
그를 사랑함으로써 온전히 불행하고 완전히 감격했던 감정의 책장을 떠올린다. 매일 같이 마주했던 손바닥의 온도를 기록한다. 나를 노래하게 글 쓰게 웃게 나를 넘어지게 구르게 울게 만드는 사람. 우정과 연애 사랑과 증오 잠깐의 순간에도 어떤 가사에도 영화 장면에도 우리 둘을 대입하다 잠 못 들게 만드는 사람.
습하고 무거운 밤공기를 헤치고 걷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 물어봤다. 그의 침대 맡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책이 아니라면 뭐가 있는지. 그는 휴대전화라고 말했고, 휴대전화로 뭘 하는지, 그게 글감이 되는지 물어봤지만 대답도 미심쩍었지. 세미한테 전화해요.
밤에 전화해서 하는 말은 이제 잘까? 뿐이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보면 무슨 소리냐는 듯 더 동그랗게 눈을 뜨는 사람. 유튜브의 빗소리는 여전하고 이제 정말로 바깥에 비가 오는지 아니면 내 방 안에서만 비가 오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갑작스러운 진동이 건물 전체를 감싼다. 아무래도 이 밤이 폭풍처럼 지나가려나 보다. 비를 유난히 싫어하는 선유를 생각한다. 깨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연락하지 않는다. 선잠이 잦고 늘 피곤한 사람. 일 년 반이 넘게 침대 맡을 지키는 사람. 어두운 밤 조각난 나의 잠을 꿰매 이어 붙이고, 이마를 쓸어 넘겨주는 사랑. 나의 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