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고픈 것으로부터 로맨스
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건
꿈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것이지
- ‘연금술사’ 중에-
나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은 5살 무렵이다.
그때 나는 울산에 살고 있었다.
‘옥상’이 있는 2층 집이었다.
하늘이 뭔지 알았을까?
그 짧은 다리로 옥상을 자주 오르내렸다.
두 살 어린 동생이 따라오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마침 밑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가 동생을 “나이스 캐치”했지만, 그날부로 우리 옥상은 ‘폐쇄’ 되었다.
집 근처에는 시장이 있었다.
처음으로 ‘방방’이라는 것을 탔다.
조금 더 열심히 움직여 하늘과 가까이 닿았다.
엄마 두 손을 꼭 잡고 방방 뛰었지만, 5분도 안돼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산을 떠나오던 그날까지 재도전은 없었다...(지금도 겁이 많다.)
그해에 IMF로 이사를 왔다.
엄마아빠가 처음 만났던 곳, 큰 꿈을 품고 떠나간 시골이었는데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이사 온 집에는 ‘다락방’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앞마당과 함께 하늘이 보이는 문.
자주 다락방에 올라가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 시골에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고 글 쓰길 좋아해서였을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참으로 평범하게 자랐다.
이 시골의 잔잔한 느낌 그대로, 학교만 다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회사원이 되었지...)
사실 ‘시골’을 핑계 삼아 그 어떤 것도 도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저 꿈으로 두고 설레고만 싶었을지 모른다. 실패와 좌절과 성장은 거부한 채.
이 마음이 극에 달해 고등학생 때는 가방과 교과서 없이 한 손에는 책 한 권과 한 손에는 MP3를 들고,
하염없이 창밖의 하늘만 바라보는!
소위 학교 내 ‘이상한 학생’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고3 때 돌아왔지. 피할 수 없는 K-고3이다.)
언젠가부터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 있었다.
“~할 꺼야”
그저 좋아 보이는 건 다 “할 꺼야”, “될 꺼야” 했다.
이때 포즈는 대부분 누워있었다. 혹은 엎드려 있었다.
실천력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바닥과 가까이 지냈다.
이런 딸내미를 보며, 어느 날 아빠가 얘기했다.
“우리 딸은 ‘꺼야꺼야~’ 하다가 볼일 다 보겠다.”
그후 아빠는 종종 나를 “꺼야꺼야”라고 부른다.
그렇게 성인이 된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옥상’과 ‘방방’과 ‘다락방’을 거쳐온 나는,
조금은 하늘과 가까워졌을까?
나는 여전히 “~할 꺼야” 꿈꾸는 설렘이 좋다.
다행인 건, 조금의 실천력이 생겼다는 것!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꿈’들을 찾았다는 것!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적고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100가지 중에 아직 10개 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지금의 브런치도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지금의 글을 쓰면서도 상상하는 꿈이 좋고,
앞으로 꿈을 이루면서 변화될 삶이 설렌다.
상상해 보자. 꿈이 이뤄진다고 믿어보자.
멀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가까이에 있는 작은 꿈을 쫓아보자.
상상만으로도 ‘좋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