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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안 Jul 31. 2024

불안함이었을까 외로움이었을까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해지자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어릴 적 나는 특정한 상황이면

항상 느끼던 감정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대게는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와 재미있게 잘 놀다가

문득 이런 감정이 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냥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 헤집어 놓는 정도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정확한 시점은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때 그 감정이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봤는데

항상 나의 감정이 최고조를 찍을 때

딱 이 감정이 불쑥 나타났던 거 같다.


그러니까 가장 행복할 때 가장 불안해졌던 거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는데

내가 7살이었을 즈음 동네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집에서 놀던 상황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그 친구집에서 시간을 때우며 놀아야 했던 날이었다.


느낌상 시간은 저녁 8시쯤이었던 것 같고(정황이나

물질증거는 없다. 그냥 그때의 느낌이 기억날 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말 재미있게 놀고 있다가 순간 그 감정이 휘몰아치듯 내 가슴을 정복했다.


그렇다고 재밌게 놀다가 갑자기 노는 걸 그만두거나 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어릴 땐 참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큰 아이였다. 자신에게보다 타인에게 더.) 겉으로는 계속해서 웃고 있는데 마음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 그 모순적인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상황보단 내 감정이 장기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석해 봤을 때 일하러 가신 부모님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함과 부모도 형제도 없이 우리집이 아닌 다른 가정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로움이 더해진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감정은 상황이 바뀌고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도 지속되어 나를 괴롭혔다. 본체는 사라지고 실체만이 남아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해봐야 예닐곱 살이었던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감정이라 그게 어떤 느낌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던 것 같다. 머리로는 부모님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끝내신 후 나를 다시 데리러 오실 걸 알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어린 아이였었나 보다.


어릴 때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둬서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이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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