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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희 Jul 19. 2023

1. 프롤로그 - 들어가면서

집밥의 배신




때려치워야겠어.


중얼거리면서 나는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단어를 끌어내 썼다 지웠다 반복했지만 결국 문장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해는 하늘 높이 떠 있고 마당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햇빛에 앉아 바깥공기를 흠뻑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봐도 역시나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시작해야 하는데 좀처럼 하얀 컴퓨터 화면은 문장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는 커서는 빨리 지나가라고 재촉하는 신호등처럼 깜빡이는데. 

마냥 미루고 싶어 집니다. 

우울증과 공황인 딸과 그걸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는 너무나 사적이고 내밀한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 있겠지요. 나에게는 지난 열다섯 달이 그런 기억인 때문입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져야겠습니다. 어쩌면 잊고 싶을 만큼 아파서가 아니라 나의 치부를 드러내기가 부끄러운 건 아닌지. 


처음에는 그랬어요.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시간보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순간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다 보면 음습하고 어두운 터널을 숱하게 통과하는 게 당연하다고, 딸의 우울증과 공황은 그저 또 하나의 터널일 뿐이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늘 그랬듯 그저 버티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터널은 내가 만난 것들 중 가장 어둡고 음습했으며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출구가 봉쇄된 터널에서 헤매는 느낌.

너무 안일했던 걸까요.  

맞아요. 그런 것도 같습니다. 우울증이나 공황을 영화나 소설, 혹은 기사에서만 접했을 뿐 아는 바가 없으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것과 마주했을 때 나는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했어요.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손을 뻗어 딸에게 닿는 일이었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아서 멍하니 앉아 있기나 했으니까요. 

잊고 있던 그 일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첫딸이 태어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생명을 출산했다는 감격은 너무 짧았고 이따금 불쑥 화가 났어요.

내 옆에 누워 있는 딸이라는 아기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울어대며 기저귀  갈아라, 배가 고프다, 맡겨 놓은 게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했고, 내 몸은 아프고 기운은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 때문에 잠조차 편히 잘 수 없었으니까요. 단 몇 시간만이라도 깨지 않고 자는 게 소원이던 나에게 딸의 주름진 얼굴은 나도 남편도 닮지 않은 한낱 작은 아기일 뿐이었습니다. 

  남편은 새벽에도 아무 불만 없이 일어나 자상한 표정으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는데, …나는 모성애라는 게 없나? 저절로 비교가 되더군요. 이런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남편에게? 제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엄마에게? 아니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나만 이 모양인데, 다른 산모들조차 자신의 아기가 예뻐 죽겠다는 표정인데. 그래서 나의 불온한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성애가 결여된 엄마는 엄마가 아니잖아요. 

고른 숨소리를 내며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면 얼마나 죄책감이 들던지.   

그때 알게 된 겁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시작된 엄마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고 먹이고 재우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을 했습니다. 모성애도 없는 엄마라는 열등감을 안고서.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백일이 채 지나지 않아 한낱 작은 아기는 내 딸이 되더군요.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느라 여전히 잠을 설치는데도 아기는 똥조차 예뻐 보이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내 딸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모성애가 있었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엄마라는 자격증이라도 딴 것 마냥 기쁜 나머지 한 생명이 태어나 걷고 말하고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일보다 경이롭고 귀한 경험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은 그냥 내 운명이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지더군요.


어른들이나 혹은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에 관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키워드가 있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도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키워드를 희생이라 이해했습니다.

희생이라면, 어쩐지 희생이라면 나도 할만하다, 싶더군요. 

나에게는 이미 내 모든 시간과 정성을 딸에게 쏟은 경험치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일차원적인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나는 무모하고 서툴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가다 보니 멈출 수 없었고, 나중에는 멈춰지지도 않았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 폭주하는 자동차처럼. 

좋은 엄마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어요.

두 딸이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입히고 씻기는 건 기본이고, 외식은 거의 하지 않으며 손수 밥을 해 먹이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 주고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철 따라 바다로 놀이동산으로 데려가 캠핑을 하거나 놀이기구 앞에서 몇 시간이고 줄을 서고,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뒤로 미루고 뭐든 딸이 먼저인 게 희생이라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 생각할 만큼. 내가 좋은 엄마인 것처럼 느껴졌고 역시나 노력은 헛되지 않는구나,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계획대로 될 리가 있나요.

두 딸이 사춘기를 겪으며 다시금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지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거나 은근슬쩍 덮어두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두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길을 찾아가느라 각자 다른 곳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어요. 다행스럽게도 두 딸은 바쁜 와중에도 집에 오기를 바라는,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부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이는 그런 날이면 나는 빈 접시에 음식을 가득 채우며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습니다. 

나는 점차 시들어갔고 딸들은 점차 피어났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어요.

딸만 보면 너무 대견해서 고마워서 그저 웃음이 났으니까요.

뭐, 아주 가끔 그런 기분이 들긴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중년이 되어버린 기분.

젊음은 사라지고 빈손으로 늙어가는 기분.

이럴 때마다 나를 다독였습니다. 

에잇, 내가 왜 빈손이야. 다 큰 딸이 둘이나 있는데. 맞아요. 자식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큼 기쁘고 충만해지는 일이 있던가요. 딸의 희망은 곧 나의 희망인 셈인데. 

으리으리하게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더 바라면 욕심이다.

이렇게 늙어가면 된다.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정말 괜찮다. 


작은딸이 막 우울증과 공황을 진단받은 때가 생각납니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던 그때 

비열한 삶은 또다시 그 생각을 끌어내더군요.

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엄마라는 사람이 위기에 처한 딸에게 눈곱만큼의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눈물이나 닦을 뿐이었으니까요. 애초에 나에게는 좋은 엄마는커녕 엄마의 기본 자질조차 없다고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제야 정확히 알겠더군요. 그동안 자조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거라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걸. 

그때 나는 희망을 버렸습니다. 

나는 영영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딸 주변을 맴돌며 뭐라도 해보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었습니다. 기본 자질이 없어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다더니 정말 그런 걸까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딸의 그 일은 잊고만 싶은 아픈 기억입니다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마냥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딸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테고, 딸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딸의 감정을 이해하고 내 감정을 이해받을 날들이 없었을 테고, 엄마로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도 없었을 테니, 이런 게 인생의 아이러니일까요? 

잊고 있던 그때의 감정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가슴속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집니다.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마당으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붑니다. 

주황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나뭇잎에 닿은 바람이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나 여기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뭇잎에 흔적을 남기고

나뭇잎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이 이리로 저리로 물결칩니다.

딸과 함께 겪은 열다섯 달이 나에게 남겨진 흔적처럼.

어떤 건 낯 뜨겁게 부끄럽고 어떤 건 가슴 미어지게 슬프고 

또 어떤 건 환하게 웃게 하는 그런 흔적들.

그 속에 딸이 있고 내가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시간에 부식되어 희미해지기 전에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지나버린 과거에는 미래가 내포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노년이 되어버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여기 있어.

딸이 아니고 나 자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뭇잎에 닿아 모습을 드러냈듯이 

딸에게 닿아 모습이 드러난 바로 나 자신 말입니다. 

마음을 다잡습니다. 


때려치우지 말아야겠어.


어쩌면 머나먼 과거의 그때나 가까운 과거의 그때나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던 좋은 엄마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딸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나에 관한 것으로 귀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둠이 오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흔적들이 우우우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다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의자를 바짝 당긴 다음 숨을 깊이 들이마십니다.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립니다.


컴퓨터 커서가 하얀 화면에서 깜빡입니다.

재촉하는 기색 없이

리드미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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