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눈이 부시게 높고 푸른 하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선물 같은 시월이었다.
갱년기 증상이 한풀 꺾였는데도 여름은 나에게 기분 좋은 계절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몸에서 열이 나는데 피부에 달라붙은 뜨거운 공기가 여간해서는 식지 않는 여름. 속에서는 열기인지 화인지 구분도 안 되는 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걸 누르고 누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폭발해 버리는 여름. 그런 여름이 갔으니 가을이 선물처럼 반가울 수밖에.
새로운 뭔가를 시도해도 시도하지 하지 않아도 좋은 가을.
당연히 나는 후자 쪽이다. 뭔가를 시도할 만한 나이를 훌쩍 넘긴 오십 중반, 그러니까 노년이 코앞이라는 말이다. 그저 고른 숨을 내쉬며 곱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이나 바라보며 지금 이대로에 만족하는 나이.
그날도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예상되는 날이었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새벽 4시.
누가 흔들어 깨우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떠졌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고 질끈 눈을 감아도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정신만 점점 또렷해졌다. 틀렸다. 더 누워 있어 봐야 잡생각으로 머리만 아플 것이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조용히 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 밑에 있어서 큰길보다 기온이 삼사 도 낮은 우리 집. 마당 의자에 앉으면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를 바로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혼자 깨어 있는 새벽에 시간 때우기 적당한 곳.
찬 공기가 살랑거린다.
셔츠를 바짝 여미고 의자에 앉았다. 이런 시간에 이러고 있다니, 젊은 시절의 나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잠순이. 등만 대면 잠이 쏟아지고 하루 종일이라도 잘 수 있었는데. 잠이 없는 엄마는 그런 나를 신기해했지, 어째 저렇게 잘까,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때의 엄마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나는 이제 등을 대도 잠이 오지 않는다. 이제 엄마가 말한다. 벌써 잠이 안 오면 어쩌니. 안타까운 얼굴로. 어쩌면 엄마는 잠이 부러웠던 걸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몸이 말하고 있었다.
성장이 멈추고 하루만큼씩 낡아간다.
그러니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하루만큼 주름진 얼굴이고 뼈마디를 보호하는 연골도 하루만큼 닳았을 것이다.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몸으로 자신의 상태를 불쑥불쑥 깨닫게 되는 나이.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는 나이. 잠이 젊음의 상징이었다는 걸 모른 채 젊음은 덧없이 지나가버린 중년.
이럴 때는 가끔 집 떠난 딸들이 그리웠다.
두 딸이 각자 자취를 한지 오 년쯤이 지났는데도.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딸들이 집을 나가고 얼마간은 정말이지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몸속의 주요 기관이 딸들과 함께 빠져나간 듯 텅 빈 것 같았으니까. 온기를 잃은 집안에서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 거리고.
맛있는 걸 먹을라치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아서 딸들이 밥은 먹고 사는지 걱정하느라 안절부절못했지. 딸들이 집에 오기만 기다리고. 그때는 그랬었다. 딸들은 나에게 온기였구나, 딸들은 나에게 커다랗구나.
물론, 좋은 것도 있었다.
우선 반찬 하는 시간이 줄고 빨래가 줄고 이제나 저제나 집에 들어올까, 걱정하는 시간이 줄고, 자유로운 시간은 늘었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당연지사. 나는 점점 딸들이 집에 오는 것도 좋지만 남편과 둘만 있는 것도 좋다는 쪽으로 변하고 있었다.
딸들이 있을 땐 아침도 든든하게 먹이려고 항상 밥을 차렸는데. 그것도 각자 나가는 시간이 달라서 매일 두세 번씩 꼬박꼬박, 그러고 나면 아침부터 녹초가 됐었지.
그러나 지금은 커피와 식빵 두어 개면 충분하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토마토를 썰고 치즈를 넣고, 어쩌고 하는 것도 번잡스러워 토스터에 구운 빵에 잼을 발라 먹었을 것이다. 그때 남편과 오늘 날씨가 어떤가, 뭐 그런 말을 주고받았던가.
그때였다.
커피를 더 마시려고 커피포트를 막 들어 올린 참이다.
남편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면서 요란한 벨소리를 낸다.
보나 마나 큰딸이겠지.
평소 출근길에 자주 전화하니까 안 받아도 뻔하다. 머그잔에 커피를 채우는 내 얼굴에도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누르는 남편 얼굴에도 웃음기가 돈다. 단지 벨소리만 울렸을 뿐인데, 공기 정화 스프레이를 뿌린 듯 실내 공기가 한결 상큼해진다.
아빠, 엄마랑 같이 들어요.
역시나 큰딸이다.
이미 같이 듣고 있습니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내가 장난스레 말한다. 가끔 큰딸은 두 번 말하기 싫다며 엄마 아빠를 함께 소환하기도 했으니 유별난 일은 아니다.
놀라지 말고 들어요.
엉? 놀라지 말라고?
나는 약간 긴장하며 내 쪽으로 핸드폰을 끌어당긴다.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는 경어도 왠지 모르게 신경을 자극한다.
큰딸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제 일을 말하기 시작한다.
동생이 지금 거기 있다고.
순간 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작은딸 자취방은 언니와 자동차로 다섯 시간이나 떨어져 있는데, 지금 거기 있다고? 직장도 안 가고? 단순히 놀러 간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 아니야, 별 일 아닐 거야. 불길한 예감이 몰려온다.
어떻게? 기차 타고 간 거야?
아니, 내가 새벽에 데려왔어.
늘어져 있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말문이 막힌 나는 입술만 달싹이고 큰딸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늦은 밤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도착했다고.
언니, 나 직장 관둘까?
뜬금없는 시간에 온 뜬금없는 문장을 언니는 아주 잠깐 들여다본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한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동생은 조금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답장 정도나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언니 목소리는 동생의 감정을 자극한다.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울고 있는 동생과 통화 중인 언니. 언니도 당황한다. 이런 일이 없었으므로. 전화 통화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직감한 언니.
그 길로 다섯 시간을 운전해 동생을 차에 태우고 다시 다섯 시간을 운전해 동생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데려왔다고, 언니인 큰딸이 엄마인 나에게 말한다. 지난밤의 감정이 배제된 담담한 목소리.
밤새 얘기를 많이 했는데 상태가 안 좋아. 아침에 병원 알아보고 예약도 했어. 내일 병원 갈 거야.
큰딸은 실험실 앞이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핸드폰을 끊는다.
통화가 종료된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종료되지 않는다.
검게 변한 핸드폰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다시 핸드폰 액정이 밝아지고 큰딸이 말할 것만 같다. 다 농담이라고, 어제 밤늦게까지 실험했는데 가긴 어딜 가, 어제 아무 일도 없었어,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할 것만 같다. 그래주기를 바란다.
야속하게도 핸드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를 비웃듯 검은색 그대로다.
거실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나는 굴하지 않고 빠르게 중얼거린다.
큰딸이 오버하는 거다. 동생이 울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갑자기 그럴 리가 없잖아, 병원에 가도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겠지. 맞아, 그럴 거야.
그 상황이, 작은딸의 상태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나는 악착같이 거부한다. 마치 내가 거부하면 거부되는 일인 것처럼.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이 떨쳐지지 않았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몽롱한 상태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어제와 비슷하게 시작된 하루는 더 이상 어제와 같지 않았고 너무 길고 지루했으며 불길한 예감은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다음 날이 밝았다.
어제보다 더 일찍 잠이 깨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을 것이다.
나와 남편은 핸드폰을 식탁 한가운데 놓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소파에 앉았다가 안절부절못했던 것도 같다.
일분이 한 시간처럼 더디게 흘렀다.
마침내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핸드폰이 울렸다.
요란한 핸드폰 소리처럼 심장 소리도 덩달아 요란해졌다.
남편이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누르는 그 시간조차 더디게 느껴졌다.
어제보다 더 차분해진 큰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울증이랑 공황이래요.
순간 요란하게 뛰던 심장이 멈추더니 맥없이 쿵 떨어졌다.
온몸의 기운도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난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큰딸이 목소리를 밝게 포장했다.
그래도 걘 병원 가자고 하니까 싫다고 안 하더라. 병원 거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그럼, 자기가 아픈 거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직장도 관두라고 했어.
그렇게까지 해야 돼?
큰딸이 단호하게 말했다.
응,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을 거야.
큰딸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저 터무니없었다. 우울증? 공황? 이런 건 나랑 아무 상관없는 먼 일 아닌가? 그런 게 왜 내 가족에게. 그런 게 왜 우리 집에서 제일 밝고 명랑한 작은딸에게.
도무지, 도대체 납득되지 않았다.
징후도 없었는데, 추석에도 괜찮았는데….
온갖 모르는 것들이 내 머리를 들쑤시고 있었다.
우울증이나 공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고. 아니 그게 뭔지조차 모르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답답했고 막막했고 한심했고 종내는 화가 났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한 건 애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날의 모름은 민들레 꽃씨 같은 건데,
손바닥에 올려놓고 후 불면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아갈 가벼운 것들.
하긴 그때는 이 일이 내 과거를 들추고 현재를 휩쓸고 미래마저 바꿀 거라는 걸 몰랐으니까.
그렇게 무방비 상태인 나는 선물 같은 시월에 불행을 통보받았고
높고 푸른 하늘은 잿빛이 되었고 선선한 바람도 멈추었다.
그날 이후 몇 달 동안 나는 계절을 감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