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돌려보았다.
그 일이 시작된 곳. 작은딸이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던, 그때는 어땠나?
취직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는 광고 일이 처음이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꽤 재밌고 배울 게 많다, 고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
영화감독이 하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취직을 한 거였다. 그런데 그렇게 의욕적이니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고 대견하기도 했어.
네다섯 달이 지났을 때는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힘들지만 억지로 의욕을 내는 느낌.
여덟 달이 지났을 때는 목소리도 의욕도 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많이 힘드냐고 묻는 내 말에 작은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힘들어. 그러면 나도 망설임 없이 덧붙였지. 힘들어서 어쩌니. 넌 잘 해낼 거야. 할 수 있어. 기운 내. 이걸 응원이라고 했었다. 나는.
맞다, 그랬다.
이건 결단코 전조증상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우울증이나 공황을 의심하는 건 전문적인 영역이라 쳐도, 딸의 마음 정도는 살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우울증인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만 어쩜 그렇게 쏙쏙 뽑아서 쏟아냈는지. 무식하고 용감하게. 물론 이건 나중에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찾아보고 알게 된 거지만.
내내 힘들어하는 작은딸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그게 다 경험이려니, 처음 하는 일인데 당연하려니, 힘들어도 잘 해낼 거야. 맘대로 판단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고백하건대 나는 작은딸이 직장을 관두지 않기를 바랐다.
간절하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나의 딸.
겉으로는 응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내가 보기에 영화감독은 가시밭길이고 자갈길이었다.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보장되지 않는 불규칙하고 적은 수입을 받고 불투명한 미래에 자신을 쏟아붓고 힘겹게 살아갈 것만 같았다. 안 봐도 그 고생이 눈에 훤히 보여서, 그래서 간절하게 바랐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직장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나는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고, 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다.
너하고 너무 안 맞는 거 아니야? 힘들면 관둬.
지금도 이 말을 하지 않은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러니까 딸은 끊임없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러니까 나는 끊임없이 딸의 신호를 무시했고
혼자 끙끙 앓던 딸은 종국에 마음의 병이 나버린 거다.
그러니 전조증상이 없었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말자.
그건 핑계도 아닌 핑계를 대며 나를 속이려는 수작이다.
딸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했으나 모든 힘이 소진되어 주저앉아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조금만 더 힘을 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말만 지껄인 걸 덮으려는 수작.
너는 지금 마음이 어떠냐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 이면에 깔려 있는 본질, 딸의 상태를 살피는 질문은 하지 못했던 죄책감을 숨기려는 수작.
정말 그랬다.
내가 한 일은 평소에는 고작 밥은 먹었냐, 묻는 거였고, 지난 추석에 왔을 때는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고 들떠서 맛있는 걸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딸의 마음도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서.
그러니 딸은 대충 분위기를 맞췄을 것이다. 어스름한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웃고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는 없었으리라.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도 딸의 내면 더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마음이 닫혀버렸을 것이다. 괜찮은 척, 이게 딸이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였고.
위험에 처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답이 없다. 그 사람은 점차 기운을 잃고 에너지도 소진된다. 결국 포기한다. 구조 요청이라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거니까. 아니 ‘구조’라는 것에 의미를 잃는다. 구조된다 한들 뭘 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가 사라진다.
어두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게 자신을 감싼다.
그 사람, 나의 딸.
나의 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괜찮은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 추석, 술잔을 부딪치며 방글방글 웃고 있는 식탁에서 작은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족이 있으면 뭐 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라고 느꼈을 까? 나를 눈곱만큼도 모르는 엄마가 엄마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을까?
나는 차라리 그렇게라도 중얼거렸기를 바란다.
그렇게라도 너의 마음을 속으로라도 표현했으면 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았다. 나도 묻고 또 물었으니까.
딸이 저 지경이 되도록 모르는 엄마가 엄마일까.
그러면 이건 무엇인가?
딸들은 전화통화를 할 때 가끔 말하곤 했는데…
내가 어디 아파? 물으면
엄마, 어떻게 알았어? 라며 놀랐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
정말이지 한 마디만 들으면 딸의 몸이 아픈지 기분이 안 좋은지 곧바로 느껴졌는데… 이건 다 뭐란 말인가.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이제 와 그런 게 무슨 소용인지.
난 그동안 뭐 보고 뭘 느낀 건지 혼란스러웠다.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았고
나는 결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