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큰딸이 말했다.
당분간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 병원도 데려가야 하고.
그래서 휴가 받으려고.
핸드폰으로 큰딸의 말을 듣는 나.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묻는 나.
그래도 돼? 바쁘잖아.
어쩔 수 없지.
실험이다 뭐다 할 일이 쌓여 있지만 큰딸에게 그런 건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았다. 저렇게 혼자 애쓰는데 나는 딸들의 안부와 일정을 집에 앉아 듣고만 있다.
큰딸이 말했다.
오늘은 바다에 갈 거야.
바다에 간다는 말은 나를 두 딸에게로 데려간다.
나는 여기 있지만 나는 거기에도 있다.
동생을 차에 태운 언니.
바다로 가는 내내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 노래 어때? 날씨 참 좋다. 따위의 말들.
그렇게 언니는 공기가 가벼워지고
동생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유도한다.
바다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어쩌면 작은딸은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훅 끼치는 비릿한 냄새가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소금기를 머금은 끈적한 바람이 볼에 스칠 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근육이 이완된다. 그래, 난 바다를 좋아했지, 잊고 있던 바다가 바로 앞에 있다.
언니와 함께 모래밭을 걸어 바다 앞에 멈춘다.
우르르 일어났다 잘게 부서지는 파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바닷물이 신발 밑창을 적시고 깜짝 놀란 동생은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밀려가는 바닷물을 따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팔짝거린다. 그러다 모래밭에 박힌 작은 조개껍데기로 시선을 돌린다. 매년 여름 바다에서 수영하고 조개를 잡던 어릴 적 그 시절을 몸이 기억해낸다. 저도 모르게 쪼그리고 앉게 되고 하얀 조개껍데기를 들어 올리는 동생.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것 같은 동생을 본다.
역시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언니.
동생에게 묻는다.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무거나.
그럼 물회 먹을까?
그래.
동생은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더 먹으라고 몇 번을 권해도 고개를 흔든다.
언니는 제일 예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동생과 커피를 마신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생은 언니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언니는 동생이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휴가 동안 큰딸은 작은딸을 데리고 매일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3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