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시월이 소리 없이 지나고 있었다.
작은딸이 우울증과 공황이라는 걸 알게 된 지도 삼 주.
난 아직 여기에, 작은딸은 아직 언니 자취방인 거기에 있었다.
나와 작은딸의 거리는 고작 이백 킬로미터.
그러나 엄마라는 사람이 한 일이란 고작 큰딸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
하나가 회사를 관둔다고 했더니 대표가 잡나 봐, 그러니까 또 흔들리더라고, 단호하게 끊으라고 했어.
큰딸이 전해주는 근황을 듣고 어, 어, 왜 그런다니?
엄마라는 사람이 한 말이란 고작 이런 것.
그때 내 심정은 어땠나?
물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거기가 머나먼 타국이더라도. 아니 그 어떤 곳이라도. 그러나 작은딸은 나와 두어 번 통화했을 때 네, 아니요, 괜찮아요, 같은 짧은 대답만 했지. 단단하게 응고된 목소리로. 통화조차 불편하다는 듯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발만 동동 굴렀고.
두 시간 삼십 분이면 도착하는 이백 킬로미터 거리인데 심정적으로는 수천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 마치 통신이 불가능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랄까,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입은 바짝 타들어가는.
큰딸의 전화는 오아시스 같은 거였지.
별 수 있나, 오매불망 큰딸 전화만 기다리는 수밖에.
어, 으응.
시답잖은 맞장구나치더라도 큰딸이 전해주는 몇 마디는 한 모금 물처럼 달디달았어.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곤 했지.
내가 갈까?
아직, 좀 나아지면.
큰딸의 반복되는 대답.
그러고 나면 머릿속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하나 가득이었던 것 같아.
왜 날 거부하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이런 건 둘째 치고라도
딸이 우울증과 공황이라는데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딸이 딸에게 맡겨졌는데도 내 손으로 지은 밥 한 끼 먹이지 못하고,
아픈 딸을 돌보는 엄마의 정당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엄마였다. 맞아, 당당하지 못한 엄마였다. 나는.
두 딸에게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일 년 같은 하루가 흐르고
십 년 같은 일주일이 흐르고.
다행히 시간이 그냥 흐른 건 아니었다.
적어도 시간은 내 편이었다.
삼주에 접어들자 작은딸이 없는데서만 전화하던 큰딸은 동생이 옆에 있어도 통화를 하게 되었고 가끔 동생을 바꿔주기도 했으니까. 여전히 네, 아니요, 같은 단답형 대답이지만 목소리는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 사무치게 보고 싶어 진다는 거.
그날이 토요일이었던가.
느긋하게 일어난 큰딸과 통화하는 중이었다.
어제저녁은 어딜 가서 뭘 먹었네, 아마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별 기대 없이 내가 덧붙였다.
가면 안 될까?
하나가 된다고 하면.
그래? 바꿔 줘.
핸드폰이 작은딸에게 넘어가는 짧은 동안 콩콩콩 가슴이 뛰었다.
잘 지냈어?
네.
밥은 먹었어?
아직, 좀 있다 먹으려고.
오랜만에 듣는 작은딸 목소리는 그날따라 한결 부드러웠다.
그렇구나, 엄마가 아빠랑 가도 되나? 우리 딸 너무 보고 싶다.
침묵.
역시 안 되는구나 실망하고 있는데,
그래, 와요.
정말? 정말? 알았어. 지금 갈게.
그토록 바라던 대답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냉장고부터 열었다. 당연히 가져갈 만한 게 없었다. 그동안 반찬은 안 하고 대충 먹었으니. 양념만 챙기고 남편을 재촉해 집 근처 마트에 들러 재빨리 찬거리와 과일을 담았다. 점심 전에 도착해 빨리 밥상을 차려야 한다. 두 딸이 배고프지 않도록.
서두르자, 서둘러야 한다.
멀리 있던 딸이 코앞에 있다.
우리 딸을 보러 간다!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두 딸에게 가는 길.
운전하는 남편 얼굴도 밝아보였다. 나는 여행이라도 가는 듯 들떴다. 두 딸을 볼 생각에. 내가 두 딸에게 밥이라도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은 벌써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가만있어 보자, 밥부터 안치고, 양파랑 채소 다듬어 썰고, 아니다, 고기 먼저 양념하고, 찌개안치고, 나물 무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오랜만에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작은딸과의 심정적인 거리도 좁혀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껏 설레발을 쳤다.
몇 시간 후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되돌아가게 될 줄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