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부입니다.

자기소개로 주부라고 하면 안 되나요

by 꿈꾸는나비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대학원 신년회에 참석했다. 퇴사를 하고 오히려 맘에 여유가 없었고 코로나엔 신년회가 없었고 재작년부터 가야지 가야지 했다가 7년 만에 참석을 했다. 교수님께 드릴 차세트도 하나 사서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2005년에 대학원을 졸업했으니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학원 후배들은 이제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따로 교수님 방을 찾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고 선물을 드리고 교수님이 내주신 커피를 마셨다. 교수님은 왜 퇴사했냐, 퇴사 이후 재취업은 안 했냐, 이것저것 물으셨고 본인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셨고 이제 일 좀 해볼까 했는데 퇴직이 몇 년 안 남았다고 하셨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가 우리 둘 대화의 결론이었다.


대학원 후배들과 졸업생 선배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세마나 실에서 열렸다. 학번과 이름이 달린 명찰을 걸고 세미나 실에서 앉았다.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과제들에 대해 간략하게 듣고 20여 명의 석, 박사 과정 후배들이 한 명 한 명 일어나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졸업생 차례가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첫 순서였다.

"안녕하세요, 98학번 OOO입니다. 2005년에 졸업했으니 20년 되었습니다. 20년 중에 13년은 OO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나머지 7년은 제가 우리나라 인구를 2명을 늘려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주부로 일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참석한 졸업생 중에 주부는 나 하나였기도 했고, 선배로서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했다. 공대라서 여학생이 별로 없기도 해서, 여자 선배조차 없던 나이기도 해서, 좀 더 멋진 선배의 모습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자기소개였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식사 자리로 이동해서 저녁을 먹었다. 교수님, 선후배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 박사 과정 학생이 내가 다녔던 회사로 취업하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봤고 내가 아는 선에서 정보를 줬다. 그 정보들이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미안함도 들었다. 젊은 친구들을 보니 내가 공부하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립기도 하고, 무심히 흘러버린 시간이 애석하기도 하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출발선에 있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피어나는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처럼 되면 안 되나? 주부이면 안되나?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일도 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돈도 벌고 자기 커리어도 쌓고 살아가야 맞는 건가?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저 내 삶에 최선을 다하면 되지 남과 비교해서 뭐 하겠는가. 우리는 출발선도 결승선도 다른 각자의 경기를 하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엄마~ 빨리 와요, 같이 영화 보려고 과자 사놓고 기다렸어요."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 충분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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