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언니는 고모와 어머니를 모시고 속초여행을 다녀왔다. 두 분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건 내 기준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잘 안 맞는 엄마와 엄마와 잘 안 맞는 고모를 동시에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언니는 해낸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에 나는 언니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여행이 끝나고 두 분을 모시고 여행하기 힘들었다는 언니의 말에 싫어도 힘들어도 해야 하는 K-장녀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언니가 느꼈을 책임감이 어찌 이번 여행뿐이었으랴. 어쩌면 나의 회피와 주변의 기대가 언니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나는 안 해, 못해, 싫어'와 '네가 해야지, 할 거지? 좋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할 수 있으면 한다'는 나와는 달리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언니의 책임감은 달랐다. 받는 것에 익숙하고 편하게만 살고 싶은 나와 주는 것에 익숙하고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언니 사이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다음엔 너도 여행 모시고 가고 효도해야지."라는 언니의 농담 섞인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만을 취하려는 나의 선택이 언니의 책임감을 더 무겁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딸아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집에서 대화하다 보면 가끔 뭔가 좀 짜증 나고 답답해요. 다들 둘째여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나도 둘째, 남편도 둘째, 아들도 둘째인데 딸만 첫째다. 둘째들의 더한 이기심과 덜한 책임감이 은연중에 나타났던가. 나의 이기심을 덜어 언니에게 좀 주고 언니의 책임감을 좀 덜어 와야겠다. 그러면 엄마와 고모와의 여행에 선뜻 나설 수 있을까? 음...조금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덜어주고 많이 덜어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