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생존 기지가 건설되고 고지대에 벙커들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정부와 자본, 종교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극비에 기지를 만들고 있었다. 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이제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얼마 남지 않던 그때, 달기지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곳으로 보내지기로 했던 종자 운송 목적지가 이곳으로 바뀌었다.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 90일이 넘어가고 있다.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 비는 그칠 줄 모른 채 계속 쏟아지고 있겠지. 보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곳으로 오기로 한 종자 운송이 늦어지고 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불안한 기운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희망이자 완성이 그것이기 때문에 모두들 예민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표현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되고 그럴 수 없다. 우리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면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이곳에 우리가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충격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이곳, 수심 1235m 심해에서는 용감함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 만여 종의 미생물을 보존하고 키워내야 한다. 인류의 생존이 목표였던 우리의 임무에 종의 보존과 번식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