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교신이 잡혔다. 이곳에서 50km 떨어진 곳에서 이곳을 향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우리는 종자와 선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우리가 제대로 보존하고 키워 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이곳 해저 기지로 온 것은 5년 전. 달 기지의 설계와 정착 관련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나는 달 기지로 가는 최종 인원에서 제외되었다. 그때 비밀스럽게 조직에서 연락이 왔고 심사숙고 끝에 이곳으로 왔다. 심해의 공포와 어둠이 두려웠지만 이곳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이곳 해저 기지의 위원장을 맡고 이곳의 모든 임무를 총괄하고 있다. 해저 기지의 보안국, 기술국, 의무국, 건설국, 에너지국, 환경국, 자원국, 교육국, 식량국, 생명국 국장 열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회의를 시작했다. 각자 맡고 있는 전문 분야가 있지만 중대한 결정은 다 같이 모여 의견을 모으고 함께 결정한다. 종자들이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에 생명국이라는 담당기관이 만들어지면서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에서 일했던 연구원이 생명국 국장을 맡았다. 지구의 최대 종자 보관소라 불렸던 그곳도 물에 잠긴 지 오래다. 깊은 동굴과 같은 벙커로 침수에도 외부와 차단되어 보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지만 세상이 물에 잠긴 이상 종자를 빼내 올 방법은 없다. 지구에서 살아남은 종자들이 모두 물속에 보관된 상황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이 종자들을 지켜내야 한다. 건설국은 공간을 확보하고 냉각 온도가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몇 달을 고생했다. 생명국은 보관할 종자들과 재배 가능한 종자들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에너지국은 종자 보관에 따른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었다. 의견은 거의 합의에 이르렀다. 과연 어떤 종자들이 오게 될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5시간 후면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될 것이다.
드디어 위치가 파악될 정도로 잠수함이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기지 서쪽 라이트가 켜지자 모니터상에 잠수함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기지의 해치로 잠수함이 들어오면 물을 모두 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해치로 무사히 들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기술자들을 모두 대기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드디어 잠수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선장과 선원들이 노련하게 잠수함을 해치로 몰았다. 이제 해치의 문이 닫혔다. 잠시 후 바닷물 배수를 위해 12개의 모터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해저 기지 전체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두 시간. 드디어 바닷물이 있던 자리의 반이 공기로 채워졌다. 기지에서 해치로 가는 통로로 방호복을 입은 수십 명이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종자를 이송하고 외부 물질을 제거와 오염 여부를 판단하는 보안국 소속 작업자들이다. 통로의 문이 열렸다. 작업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잠수함 근처로 다가가 살폈다. 그리고 잠수함 입구에 오르내리기 편한 작업대를 설치했다. 그때 잠수함의 해치가 열렸고 선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 한 명이 선장과 얘기하더니 무전이 보냈다.
“ 위원장님 종자의 양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합니다.”
“사람들? 어떤 사람들?”
“ 종자 기지에 있던 사람들이요.”
“ 이런……”
생각지 못한 돌발 상황이다.
“선장과 얘기하고 싶네.”
잠시 뒤 작업자가 무전기를 선장에게 전했다.
“선장! 당신은 종자를 이곳으로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사람들을 데려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건가요?”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문제를 해결하자.
“사람들을 몇 명이나 데려왔죠?”
“모두 9명입니다. 성인 남자 2명과 여자 4명,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둘입니다.”
“……”
침묵이 흘렀다.
“계획에 없던 일이에요. 종자에만 집중했어야지요. 그들 때문에 임무에 차질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 종자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하던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도 침수가 시작되어 상태가 온전치 못한 샘플들이 많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들 상태는요?”
“다들 건강은 양호하고 지금은 수면 상태입니다. 격리실로 옮기는 건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알겠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손이 하얘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졌어. 침착하자. 서둘러 위원회를 소집해야 해. 아니, 아니야. 일단 위원회를 소집하기 전에 내가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들이 환영받을 사람들인지 아니면 불청객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