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아무 정보 없이 끌려다니는 여행도 괜찮네.

by 꿈꾸는나비

나는 집순이다.

나는 집이 제일 좋다.

그래도 꼭 필요할 때 외출을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J이다. 여행에 있어서는, 해외여행은 6개월 전, 국내 여행은 최소 3개월 전에 준비를 한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숙소를 정하고 근처 갈만한 곳, 먹을 만한 곳, 동선을 확인해서 일정을 짜고 이용가능시간과 휴무여부, 주차가능여부까지 확인을 하고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까지 챙겨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도 지난 11월에 지역을 확정하고 원하는 숙소의 예약이 풀리기를 매일 확인하다가 예약가능한 첫날에 2박을 예약했었다. 그런데 딱 그렇게 숙소를 예약하고는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위임했다. 남편은 자기만 믿으라며 큰 소리를 쳤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다. 나의 계획은 딱 하나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끌려다니는 여행. 그렇게 여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1일 차 : 나들목 여주 쌀밥 - 곤충박물관 - 드롭베이커리 - 썬밸리 - 재상막국수 (짧은 평)

나들목 여주 쌀밥 : 오후 2시에 도착했는데도 30분 넘게 기다려 밥을 먹어야 했다. 대기 공간은 작은 컨테이너박스에 플라스틱의자만 덩그러니 있었고 그나마 앉을자리도 없었다. 사람은 북적거리고 정신없었지만 음식은 정갈하니 맛있었다. 고등어와 제육볶음, 각종 나물반찬이 나온다. 돌솥밥과 뜨끈한 숭늉까지 먹으면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곤충박물관 :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들른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곤충뿐 아니라 파충류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의 눈높이라 중학생에겐 좀 아쉬웠다. 중간에 해설자 분도 계셨는데 시간 여유가 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드롭베이커리 : 차와 빵을 마시기 위해 갔는데 5시 마감이라 빵도 거의 없고 음료는 불가였다. 올리브 치아바타와 앙버터, 마늘빵을 사 왔는데 가격은 비쌌지만 빵은 맛있었다.

썬밸리 : 아이들이 어릴 때 물놀이 하러 온 적이 있었던 곳인데 남한강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산책하기도 편하고 한적하지만 이제는 오래된 티가 많이 난다. 남편은 아들과 사우나를 다녀왔는데 둘만의 좋은 시간이 되었다며 아주 만족해했다.

재상막국수 : 평양냉면 같은 심심한 맛의 막국수에 수육 한 점 먹으면 흐뭇해진다.


여행 2일 차 : 리브테이블 - 신륵사 - 빵명장 - 육즙지존마약 생고기 (짧은 평)

리브테이블 : 브런치도 파는 카페이자 남한강 옆에 자리한 곳인데 전날 눈이 와서인지 더 운치 있었다. 스파게티와 피자, 샐러드를 주문해 먹었는데 역시 누가 차려주는 건 다 맛있구나. 아이들이 허겁지겁 맛있다며 먹은 곳.

신륵사 : 눈 쌓인 신륵사를 찾기 위해 한참을 걸었는데 신륵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어 남편 몰래 눈을 흘겼다.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의 사찰은 운치 있다. 신륵사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가 여주 8 경이라고 했는데 어제저녁 종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빵명장 : 유기농 밀가루를 쓴다지만 빵도 음료도 너무 비싸다. 여주 빵값이 무서울 정도. 잠시 언 몸을 녹이기엔 좋았다.

육즙지존마약 생고기 : 고기가 다 구워져 나오고 심지어 겉바속초. 멜젓이 나오고 반찬도 정갈하니 좋았다. 식사 메뉴도 저렴하고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는 맛집이었다.


여행 3일 차 : 여주옹심이 - 여주박물관 - 여주 출렁다리 - 연갤러리카페 - 명성황후생가 - 세종대왕릉 - 덕평휴게소 (짧은 평)

여주 옹심이 : 11시 오픈 전에 도착해서 좀 기다리다 먹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맛은 보통이었는데 같이 먹은 수수부꾸미가 더 맛있었다.

여주박물관 : 여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볼거리도 많고 좋았다. 여주 8경을 소개하는 시청각 자료가 기억에 남는다.

여주 출렁다리 : 출렁다리는 처음인데 정말 다리가 살짝 출렁인다. 발밑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무섭기도 하지만 강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풍경이 눈부셨다.

연갤러리카페 : 분위기 좋은 카페. 어르신들이 많이 오실법한 분위기인데 주인분이 매년 세종대왕릉에서 한글 붓글씨 대회를 주최하신다는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카페는 갤러리처럼 한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많다.

명성황후생가 : 사실 여행 내내 매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문이 닫혀있거나 휴관일이라 남편이 가족들의 원망을 들었던 곳으로 마지막날 우여곡절 끝에 방문했다. 명성황후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세종대왕릉 : 예전에 한번 온 적이 있는데 그때에 비해 많이 정비가 되어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입장하니 너무 쌀쌀해서 세종대왕릉만 겨우 보고 왔다. 따뜻한 봄이었다면 거닐기 참 좋았을 거다.

덕평휴게소 : 집까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여행엔 꼭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먹어야 한다는 아이들의 요청에 들른 곳인데 역시 여행의 마무리는 휴게소인가 보다.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매번 모든 걸 준비하고 운전까지 마다 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이번 여행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운전도 하지 않았다. 살면서 이런 여행은 처음인 것 같다. 남편이 이끈 이번 여행에선 동선이 꼬여 같은 곳을 하루에 다섯 번 지나가기도 했고, 애써 찾아간 곳이 휴무이기도 했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기도 했고, 메뉴가 뭔지도 얼마인지도 모른 채 이끌려 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무런 정보 없이 마주하는 여행도 색다르고 괜찮았다. 가끔은 조급함을 내려두고 정해진 시간이 아닌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게 여행의 뜻인데 이제야 진짜 여행을 한 느낌이다. 다음 여행은 더 계획 없이 떠나볼 계획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