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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비 May 20. 2023

10. 그녀의 옷장... 열지 말 것.

판도라의 상자는 후회를 그녀의 옷장은 분노를

 딸아이의 방은 늘 정리정돈이 잘된 깨끗한 방입니다. 크게 어지럽히지도 않고 책상은 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골라준 옷 대신 스스로 선택해서 입길 원했고 고학년이 되어서는 옷정리도 스스로 하길 원해서 아이 빨래를 개서 침대에 올려두면 침대밑 서랍장에 아이가 정리해서 넣습니다. 특히나 아이의 옷장은 계절이 바뀌어 옷정리를 할 때를 제외하고 열어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옷도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으니 더욱더 옷장을 열어볼 일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두꺼운 옷들을 넣고 얇은 옷으로 꺼내려고 딸아이의 옷장을 열었습니다. 열지 말았어야 할 그 문을... 말이죠.

옷장을 열고 처음 든 생각은 '저게 누구지?'였습니다. 어떤 형태가 체육복 바지를 뒤집어쓰고 양말을 쥔 채 교복 치마를 걸치고 그 밑으로 팬티스타킹이 축 늘어져 누워있는 형상이었죠. '헉'하고 소리를 지르며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딸아이는 제 소리에 저를 돌아봤습니다.

"아, 제가 치우려고 했어요."

아이의 방이 깨끗했던 이유는 이렇게 아무거나 다 주워다 쑤셔 넣어도 되는 옷장 덕분이었나 봅니다. 용기를 내서 체육복 바지를 당겨봤습니다.

"아, 그거 한번 더 입으려고 뒀어요."

"그럼 옷걸이에 걸어 뒀어야지."

양말을 집어 들었습니다.

"아! 그건 서랍에 넣어야 하는데 왜 여기 있지?"

꼬깃꼬깃 구겨진 교복치마를 끌어냈습니다.

"요즘 매일 체육복을 입어서... 입을 일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구겨진 스타킹을 집어 들고 딸아이를 돌아봤습니다.

"신었다가 올이나가 벗어둔 건데..."

"너!!!!! 이게 뭐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말았습니다. 순간 우리 둘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니, 진짜 내가 정리하려고 했어요. 진짜예요. 아~ 어떻게 정리하려고 하는데 딱 열어보세요."

다행히 한쪽이 잘못을 인정하면서 긴장감은 누그러졌지만 아이의 옷장문을 열었던 그 순간의 공포와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더군요. 입던 옷은 옷장에 넣지 않겠다고, 옷걸이에 꼭 걸어두겠다는 약속을 받고 딸아이 방에서 돌아 나왔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아이 책상 의자에 수북이 쌓인 개어둔 빨래가 보였습니다. 제가 개서 침대에 올려둔 빨래를 서랍에 정리해 넣기 귀찮으니 자기 전에 의자에 두었다가 다음날 의자에 앉을 땐 침대에 올려두고, 자기 전엔 다시 의자에 올려두는걸 며칠 반복했을법한 양입니다. 그래도 못 본척하고 아이방을 나왔습니다.

"저건 또 뭐야?"

"지금 서랍에 넣으려고 했는데..."

분명 이렇게 전개될게 뻔한 이야기에 저는 잔소리꾼만 될 테니까요.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주고 기다리자 맘먹고 눈 한번 질끈 감았습니다.


사춘기 아이의 방을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노크를 하고 들어갑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공간이고 저는 외부인이니까요. 그런데 앞으로는 옷장도 노크하고 열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 :     "저기요, 문 좀 열어도 될까요? 계절이 바뀌어서요?"

옷장 :   "잠시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꼭 오늘 열어 보셔야 될까요?"

나 :      "...... 주인한테 왔다 갔다고 꼭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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