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캠핑카여행] 프롤로그

은퇴 후 세계여행, 50대 부부의 시베리아 횡단 기록

by 편부효

3평의 우주, 점(點)을 넘어 선(線)으로 잇는 항해


“아빠는 부효부효~ 뾰! 엄마는 지영지영~ 쪙!”

우리 이름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 전 딸아이가 장난스럽게 지어준 선물에서 시작됐다.


부효와 지영이라는 사회적 무게를 덜어내고, 오직 설렘 가득한 여행자로 다시 태어나게 한 마법의 주문.

우리는 그 웃음소리를 명찰처럼 달고 3평의 우주, ‘에벤에셀’에 몸을 실었다.


사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미쳤다’는 낙인을 찍었다.

버튼 하나면 온 집안이 따뜻해지는 도시의 견고한 성벽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안온했다.


하지만 그 안온함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구석의 허기는 커져만 갔다. 10년 동안 현실이라는 먼지 아래 묻어두었던 '유라시아 횡단'이라는 꿈이 자꾸만 비집고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타인이 정해놓은 인생의 궤도에서 과감히 이탈하지 않는다면, 영영 '진짜 우리'의 속도로 살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이 우리를 길 위로 밀어냈다.


그동안 나의 여행은 늘 점(Point)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라는 점 위에 내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상.

하지만 점과 점 사이의 거대한 서사를 건너뛰는 여행은 늘 허기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선(Line)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구름 위를 나는 대신 대륙의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끊어지지 않는 선을 그리듯 바퀴를 굴려 가기로 한 것이다.


이 무모한 도전을 가능하게 한 건 아내 쪙의 용기와 헌신이었다.

주유소 하나 없는 시베리아의 10시간 연주행을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녀는 1종 대형 면허에 도전했다.


일곱 번의 낙방 끝에, 여덟 번째 만에 받아 든 면허증. 그것은 나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아내의 가장 뜨거운 약속이자 사랑의 증표였다.


여정이 시작되기도 전, 우리는 '비움'이라는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다. 아파트 한 채 가득했던 인생의 무게를 고작 3평 남짓한 에벤에셀 안으로 옮겨 담는 일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두고 우리는 세 번이나 싸웠다.


하지만 짐을 덜어낼수록 우리를 짓누르던 불안함은 역설적으로 가벼워졌다. 3평은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에 꼭 필요한 본질들로만 채워진,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자유의 영토였다.


2019년 5월, 마침내 강원도 동해항에서 차단기는 올라갔다. 퇴직 후 1년 차, 쉰일곱의 나이, 결혼 27년 차에 감행한 이 무모한 항해의 시작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페리 위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춤을 추었고, 다가올 미지의 땅을 향해 가슴 벅찬 건배를 나누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자유롭게 가로질렀던 그 평화로운 지평선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그리고 그 땅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될지를 말이다.


대륙의 신고식은 혹독했다. 비바람에 하역이 가로막히고 차창 선팅을 뜯어내야 했지만, 그 시련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이제 예순넷의 내가 7년 전 그 뜨거웠던 쉰일곱의 나이와 27년 차 부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이 기록을 시작한다.


이 기록은 단순히 지리적 나열이 아니다. 점을 선으로 잇고, 그 선을 다시 면으로 채워나간 어느 부부의 생애가장 치열했던 사랑에 관한 증언이다.


자, 이제 뾰와 쪙, 그리고 에벤에셀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지평선을 향해 다시 첫 바퀴를 굴린다.


앞으로 60일간의 러시아, 그리고 363일간의 세계일주 기록을 이곳에 펼쳐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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