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 탄생기] 3평의 요새를 짓다

유라시아 캠핑카 여행, 50대 부부의 시베리아 횡단 기록

by 편부효


사람들은 묻는다. "그 거칠고 험한 대륙의 길을 어떻게 고장 한 번 없이 건너왔느냐"라고.

그 대답은 길 위에 서기 훨씬 전, 우리가 ‘집’을 고르던 순간부터 시작된다.


쪙을 위한 기적, 오토(Auto) 미션의 카운티


나의 첫 번째 목표는 명확했다. 내 아내 쪙이 이 거대한 쇳덩이를 다루며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것. 유라시아 횡단이라는 거친 여정 속에서 운전 그 자체가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됐다.


당시 카운티 모델은 대부분 수동이었고 오토 매물은 검색창에서조차 잘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의 가느다란 손목과 무릎이 스틱 운전의 피로에 지쳐가는 것을 볼 순 없었으니까.


간절함이 닿았던 걸까. 기적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오토 미션 카운티 새 차. 그것은 이 여행이 축복 속에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자, 아내를 향한 나의 가장 큰 배려였다.


낭만보다 생존을 선택한 철저함


나는 우리의 요새인 캠핑카를 직접 개조하는 낭만적인 DIY 대신, 차가운 현실인 '신뢰'를 선택했다. 시베리아 한복판, 영하 40도의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차가 멈춰 선다면 그것은 곧 비극의 시작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장재를 모두 들어내고 복잡한 배선과 단열재가 얽혀있던 그 치열한 공정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나는 비용을 아끼지 않고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전문 업체를 찾아가 의뢰했다.


"대륙의 거친 숨결을 견디고, 내 아내를 지켜줄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요새를 만들어 주십시오." 이 철저한 준비야말로 여행 내내 우리를 지켜준 든든한 방패였다


3평 안에 압축된 우주: 세탁기가 바꾼 여행의 품격



에벤에셀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었다. TV,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세탁기, 화장실, 그리고 음향시설까지 일상의 편리함을 3평 안에 그대로 압축한 '움직이는 원룸'이었다.


특히 다른 여행자들이 경악할 만큼 부러워했던 신의 한 수는 바로 세탁기였다.


긴 여정 속에서 빨랫감을 들고 낯선 도시를 헤매는 대신, 언제든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햇살을 맞이할 수 있는 쾌적함. 그 작은 차이가 363일간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하고, 우리가 여행자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게 해 준 최고의 비결이었다.


편백향 가득한 성소와 대륙을 울릴 버스킹의 꿈


문을 열면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긋한 편백나무 향기. 벽면을 가득 채운 정갈한 나뭇결은 길 위의 피로를 녹여주는 우리만의 성소가 되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차 안으로 들어왔을 때 풍기는 그 짙은 숲의 향기는 그 어떤 보약보다 값진 위로였다.


또한, 나는 고성능 앰프 시스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음악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에벤에셀의 뒷문을 열면 그곳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의 세계 최고의 공연장이 되도록 설계했다.

그 선율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 줄 우리의 진심이었다.


도움의 돌, 에벤에셀(Ebenezer)


단순한 기계 덩어리에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이자, 앞으로의 길 위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최고의 기술력, 아내를 향한 나의 헌신,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합쳐져 마침내 3평의 우주가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이 요새는 이제 우리와 함께 대륙의 지평선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마쳤다.

그날 우리는 캠핑카를 만든 게 아니라, 길 위에서 살아낼 집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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