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까지 부모는 자녀의 롤모델이다.
어쩌다 일찍 들어와 어느새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놀라는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한 육아맘이 아이들은 매일매일 신비롭게 자라나는데 그 놀라운 모습을 아빠는 일 하느라 바빠 혼자만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쓴 글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다큐에서 식물이 자라는 것을 슬로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처럼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보곤 한다. 그럴 때면 경외감을 느낀다. 그런 감격스러운 모습을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빠들이 이담에 청소년기에 접어든 자녀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모성애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라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얻게 되지만 부성애는 롤모델을 통해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즉, 대인관계가 좋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라며 아이가 잘 때 나가 아이가 잘 때 들어오다가 겨우 시간이 나는 주말에는 소파에서 시체놀이를 할 수밖에 없는 바쁜 아빠들 때문일 것이다.
어느 교육전문가는 “지금까지 자녀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고 대부분 바람직하지 않았다. 아직 우리가 안 해본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세 살까지 부모가 직접 키우고 열 살까지 모범을 보인다.
그저 좋아서 한 것이지만, 세 살까지 손수 키우고 열 살까지 모범을 보였다. 그 모범이란 것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진정성이 없는 모범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해 십 대의 문턱에 들어선 열 살 딸아이. 계집아이에서 소녀가 되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기만 하다. 이제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는 그저 옆에서 믿으며 지켜봐 주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50이 다 돼가는 나이에 오토바이를 함 타보려고 이 엄동설한에 면허 따느라 뼈마디가 다 시리다. 뭐든 때가 있는데 말이다.
지랄 맞은 사춘기를 지나 드디어 성년이 되면 일체 자녀의 삶에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발버둥처야 콩 심은대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