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자녀는 부모 따라 살게 된다.

by Yolo On

연말연시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열한 살 딸아이를 둔 나는 아직 딴 세상 이야기 같은데, 아마 딸아이가 더 커도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면 젤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바로 당사자인 자녀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의 의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는 아직 어려서 무엇이 중요한 줄 모르기 때문에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탁월한 선택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딸아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재이 야, 넌 부모 잘못 만났구나. 아빤 절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을 테니깐.'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4~50년이라면 어떻게든 좋은 학교를 보내 대기업에 취직시키고 그렇게 먹고살다가 환갑 전에 죽으면 딱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다. 오래 살기에 부지런히 벌어 노후를 행복하게 살려고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살아온 삶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혹 안락한 삶과 행복한 삶이 동일하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행복은 간단하다. 부유하면 행복하다.


삶이 그런가? 그 긴 삶 중에 몇 년 안 되는 청소년기, 이런저런 좌충우돌과 실패를 맛보지 않으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한단 말인가? 어쩌면 그래서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힘들게 성공해선 돈, 명예, 여자에 그렇게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자녀가 원하는 것은 자녀 본인이 찾아야 하며, 그걸 성취해 가는 과정 또한 본인의 몫이어야 한다.


그 중요한 시기에 스스로 신께 의지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면 평생 신께 의지해 살게 되고 부모에 의지하면 평생 부모에 의지해 살게 된다. 전후 국가의 재건과 부흥 과정에서 태어나 고액과외를 비롯한 최고의 물질적 혜택을 받고 자란 40, 50대 세대인 우리 세대가 부모 의존율과 부모 폭행률이 가장 높다는 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의존적인 사람일수록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는다.


자식에게 집착하거나, 성공에 집착하거나,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무언가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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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자녀교육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마치 신앙의 척도가 자녀의 스펙에 달린 것처럼 말이다.


예수 잘 믿는 증거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증거가, 자녀의 세속적 성공에 있다고 여긴다.


예수에 대해 가장 인간적으로 기록한 누가복음엔 유일하게 십 대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수 유일의 십 대 기록은 아쉽게 딱 하나이다. 그것으로 십 대 자녀를 둔 부모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한마디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셨습니까?'이다.


십 대가 되면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나이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녀가 예수 닮길 원한다면서 키우는 것은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 아니면 부자 청년으로 키우려 한다. 그렇게 예수의 삶이나 말씀에 아랑곳없이 오직 야훼의 축복만을 원한다면 확실한 방법이 있다. 자녀를 유대교나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그럼 유대인처럼 세계 최고의 자본가가 되어 세계의 경제를 주무르며 약소국에 한없는 좌절을 맛보게 하던가, 이슬람 전사처럼 사람의 목숨 따위 우습게 알고 신의 영광을 위해 자폭하는 거룩한 전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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