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세 살에 완성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by Yolo On
한 대의 컴퓨터에 운영시스템 즉, 윈도우 버전을 얼마나 좋은 걸 설치하느냐에 따라 이후에 설치할 프로그램의 종류가 결정된다.

태어나 세 살까지의 시기가 바로 컴퓨터에 어떤 운영체계를 깔지 결정하는 아주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회로도와 같다.

우리의 뇌는 복잡한 거미줄과도 같아서 촘촘하고 복잡하게 짜일수록 튼튼한 것과 같다. 인간 뇌의 기본 구조는 태어나 세 살까지 이 거미줄과도 같은 기본 틀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리고 그런 기본 틀은 아이가 좋은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튼튼하게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법률스님은 즉문즉설에서 자녀 고민으로 상담을 하는 많은 부모에게 '세 살까지 누가 키웠느냐?'를 물어보시곤 부모가 키우지 않았다고 하면 포기하라고 할 정도이다.


그럼 왜 이런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사실을 우리나라에서는 공론화하지 않을까? 그건 우리나라처럼 맞벌이의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엄청난 사회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며 법륜스님마저 공중 매체에서는 이 부분을 다루지 않는다.


세 살까지 반드시 엄마가 키워야 한다.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우리 부부는 당시 나보다 아내의 연봉이 더 높다는 이유로 내가 일을 잠시 그만두고 홈대디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부부의 생활패턴을 아이에게 맞추었다. 아이가 잘 때 같이 자고, 깰 때 같이 깨고, 먹을 때 같이 먹고, 놀 때 같이 놀고...... 선천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먹고 자고 싸는 가장 기본적인 일에 편안함을 느끼면 아이는 기본적인 정서가 안정된다.


맞벌이 부부의 문제는 아이를 자신의 스케줄에 맞힌다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한참을 자는데 억지로 깨워 누군가에게 맡긴다. 어른도 잘 때 깨우면 엄청 짜증 나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낯선 사람과 있어야 한다. 그때 받는 아이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어른과 비교할 수가 없다.

먹을 때도 그렇다. 엄마의 출근이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의 식사시간을 조절하고 통제한다.


"서양에서는 아이에게 시간에 맞춰 가며 동물의 젖을 먹인다는데 사실인가요?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키울 수 있죠?"

티베트의 한 부족을 연구하던 저자에게 한 여인이 물었던 말이라고 한다.


아이는 표준이라는 과학적 기준에 맞춰 키워서는 안 된다.

의사 표현이 분명치 않은 초기 유아기에는 어느 정도 배고플 시간을 감안해 줘야 하겠지만, 아이가 굳이 안 먹으려 하거나 더 먹으려 하는데 권장량이 있다고 거기에 따를 필요는 없다. 간혹 그런 권고 사항에 예민한 엄마 중에 정확한 시간 간격으로 규정된 양을 먹여야 한다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자는 아이를 일부러 깨워서 먹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자면 자는 대로 먹으면 먹는 대로 울지 않는 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놔두는 게 좋다.


다행히 잠 많고 게으른 우리 부부는 초저녁부터 아이가 자면 다 같이 따라 잤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아이 혼자 자도록 놔두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잠들고 엄마를 보고 깨는 아이들은 잠도 잘자지만 깨어나 울지도 않다. 늘 열두 시간 이상 깨지 않고 잤다. 간혹 너무 오래 자느라 깨워 우유를 먹여야 하는 건 아닌지 혹 숨은 쉬는지 확인을 할 정도였다.


노는 것 먹는 것도 그렇다. 아이가 한창 놀이에 빠져 있는데 밥을 먹이거나 외출을 해야 한다며 중단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급적 아이가 지금 열중해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바란다. 아이의 습관을 들인다고 하는 것들을 따져보면 어른의 스케줄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모든 육아의 기본은 무엇이 전재돼야 할까? 바로 부모가 일을 그만두고 적어도 세 살까지는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담에 아이가 커서 감당해야 할 많은 사교육비를 마련하느라 슈퍼맘이 되어 일과 육아를 병행하지만, 세 살까지 아이를 방치해두어 문제가 된 아이를 뒤늦게 돈으로 감당하려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아이가 한 사람의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는 대에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유아기에 부모가 늘 곁에 있었다는 무의식적인 안정감이다. 그런 아이는 자존감이 높게 자라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떠한 삶에서도 만족하며 행복한 길을 찾아간다.

모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삼 년 투자해 평생을 걱정 없이 사는 것과 나중에 들어갈 교육비를 생각해 삼 년을 포기하고 평생이 될지도 모를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세상에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