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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Apr 29. 2024

생각과 기분, 기억과 감정에 대하여

영혼은 없다.



나는 판타지 소설을 자주 본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중의 하나는 '회귀'다.


'회귀'는 특정 시점의 기억 혹은 능력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와 살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사실 이런 설정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기억, 의식의 주체가 '영혼'이라는 것.


즉 회귀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몸'에 '현재의 내 영혼'이 들어가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래서 판타지 소설이 재밌다.


...


2년 전 캐나다에서 머신러닝을 공부하며 인간의 의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뇌세포 '뉴런'을 모방하여 프로그래밍하다 보니, 학습이나 예측 그리고 기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머신러닝이나 프로그래밍 자체를 쓸 일이 없어 더 이상 공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학습하는지 되짚어 본 경험은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의식의 주체는 뇌다.


뇌는 기억을 저장하고, 감각적 자극과 기억을 바탕으로 연산한다. 연산의 바탕에는 기분이 깔려있다. 기분은 다양한 장기와 뇌 사이의 세로토닌 통신을 통해 만들어진 느낌에 대한 해석이다. 


뇌의 연산의 결과물로 생각과 감정이 나타난다. 생각과 감정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바깥세상에서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기억이 풍부할수록 같은 자극을 더 면밀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아는 사람이 오케스트라의 서로 다른 악기소리를 구분해서 듣는다거나, 여러 식재료의 맛을 아는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맛을 잘 묘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ChatGPT와 같은 LLM 분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계는 있지만, feature의 수를 늘리면 model의 성능이 어느 정도 올라간다. 하지만 AI에겐 이성이 없으므로 환각 현상이 일어날 따름이다. 


...


아무튼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는 장기의 상태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래서 우울하면 운동을 하라고 조언을 하는 것이다. 장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쁜 기분을 계속 뇌에 전달하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행복하기보단 짜증과 슬픔에 가까워질 것이다.


물론 바깥 상황이 안 좋아서, 뇌가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시험을 앞두고 배가 아프다거나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에 대해 탐구할수록 어쩐지 사람이 생화학 로봇처럼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달라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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