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끼워버린 내 진로의 첫 단추
저는 학창 시절에 특별히 할 줄 아는 것이 공부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뭐 전교 1등을 한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요. 딱히 뭔가 세상에 나가서 하고 싶다는 것 없이, 두발 자유와 첫 섹스를 갈망하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물론 개성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반에서 친구들을 많이 웃겼습니다. 개그맨을 해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귀담아듣지는 않았습니다. 웃기고는 싶었지만 우스운 사람처럼 보이긴 싫었나 봅니다. 개그맨은 가오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공부도 적당히, 운동도 적당히, 노래도 적당히,... 뭐 아예 못하는 것은 딱히 없는 '팔방미인'이었습니다.
뭔가 하나에 꽂혀서 미친 듯이 파고들고 노력하는 게 저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열정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아무튼 어렸을 적부터 해왔던 익숙한 것이 입시 공부이고, 이제 한 두해만 더 열심히 하면 끝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고등학교 야자시간을 보냈습니다.
등급별로 줄 세워진 대학교들을 바라보며, 내 위치는 어디일까 생각해 보면서 말이죠. 뒤쳐지기 싫다는 마음이나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고는 딱히 공부하는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뭐 의사, 약사, 삼성 직원이 얼마나 좋은지 사회에 나가서 피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제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저의 위치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 때나 꿈꿔봤던 '샤'는 당연히 아니었고, 인서울 중위권이나 지방 거점 국립대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공'이 훨씬 중요한데, '고등학교 대문에 걸릴 현수막'을 위한 선생님들의 잔치에 휩쓸려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부하는 과목 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구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재미있는 분이었고, 덕분에 수업이 즐거웠습니다. 시험 점수도 곧잘 나와서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구과학을 전공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습니다.
한 날은 복도에서 지구과학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 지구과학 전공해 볼라고요."
"그래? 지구과학 돈 안되는데."
그 길로 지구과학의 꿈을 접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었고, 저는 수능을 쳤습니다. 성적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집에서 재수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말 잘 듣는 아들인 저는 어쩔 수 없이, 가, 나, 다 군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그날 밤이 기억나네요.
어느 과를 갈지 몰라, 네이버 지식인에 '취업 잘 되는 학과'를 검색했습니다. '전화기'가 취업이 잘 된답니다.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
별 고민 없이, 삼성을 머릿속에 그리며, 전자공학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짧은 순간에 크게 바뀌는 것이 삶이라니, 참 우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