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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05. 2024

대학교를 졸업하다.

내 대학생활은 몇 점일까?

대학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에는 뭐가 있으신가요?


저는 2박 3일 새내기 배움터(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날 아침, 겨울 옷을 입고 학교 주차장에 줄을 선채로 모여서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때가 가장 설렜던 기억이라 그런 걸까요.


새내기 시절에는 온통 연애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욕심을 부리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많았던 것 같네요.


첫 한 두 학기에는 그래도 교과목들이 고등학교 때 배우던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성적이 나쁘지 않게 나왔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술과 게임을 가까이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술과 게임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전공 공부에 관심이 없다 보니 더 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갑니다.


저는 첫 휴가를 나오기 전에, 여자친구에게 차였습니다. 많이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잠깐동안 관심병사 취급을 당해야 했지만요.


군대를 가서 달라진 것은 말라깽이였던 몸이 조금은 다부져진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잘 마치고, 무사히 제대를 한 것만 해도 좋아해야 할 일일 텐데, 뭔가 더 이루고 나오지 못해 시간을 낭비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평범한 결과가 나오도록 게으름을 피우며 자초한 것은 자신이면서, 정작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제가 참 안타깝네요.


제대를 하고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았습니다. 보상심리라는 것은 제 나약한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대 후 한 학기를 더 쉬고 복학했습니다.


학교 친구들, 그 사이에 복학한 처음 보는 선배들, 새로 생긴 후배들.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남들은 복학하면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성적이 점점 오른다던데, 저는 완만한 내리막을 그려갔습니다.


그러다가 교환학생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본교의 등록금을 내면서 해외 대학에서 한 학기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나요?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토익 공부도 하고, 학교 성적도 조금씩 신경 쓰면서 교환학생을 갈 준비를 합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습니다.


"학생아, 네가 희망하는 곳은 경쟁률이 높아서 가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다른 나라라도 기회가 된다면 가고 싶니?"


학교의 외국인 면접관 분이 제게 물어봤습니다.


"네, 어디든 보내만 주십시오."


그렇게 저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가 아닌 핀란드의 헬싱키로 떠났습니다.


2018년 새해는 헬싱키의 에어비앤비에서 맞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터지는 폭죽을 보면서 영화 타이타닉을 봤습니다.


핀란드에서 정말 많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로라도 보았고, 허리높이까지 쌓인 눈 위로 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업도 듣고, 시험도 치긴 했지만 여전히 학업은 뒷전이었습니다.


개쩐 사진, 미친 파티, 잊을 수 없는 밤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밀도 높은 6개월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제 꿈은 못 찾았지만, 영어 회화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제가 졸업을 1.5 학년 앞두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제 슬슬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 뜨겁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전공책을 붙잡고 씨름해도 몰려오는 것은 잠뿐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머리에 무언가 남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몰두했다면 성적이 조금 올랐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몰두'하는 것조차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단지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나'가 만화처럼 등장할 리 없었습니다.


그렇게 편할 대로 굴러가는 게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도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뭐 그전까지는 인생이 쉬웠나 보죠.


방심하고 게으른 토끼가 되어있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는 그런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요.


그래도 어찌어찌 졸업요건은 맞출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그럴 테지만, 마지막 학기부터 열심히 여러 회사들에 지원했습니다.


졸업장을 받고 난 며칠 뒤, 운이 좋게도 저를 좋게 봐주는 한 회사에서, 영업 엔지니어; 기술 영업 포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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