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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06. 2023

포르투갈에서 잠깐 살고 있다. (2)

나는 여기서 뭐 하지?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야 비로소 시간은 참 빠른 것같이 느껴진다.


외삼촌 댁에 짐을 풀고 며칠간은 푹 쉬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을 떠올려본다.

1. 포르투갈 전화번호

2. 비자

3. 은행 계좌

4. 일자리


일단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개통하기로 했다.


Chaves라는 근처 큰 마을에 가서 유심칩을 구매했다.(Vidago에는 유심칩을 취급하는 곳이 없다.)


드디어 포르투갈 전화번호가 생겼다.


<토막> 상식! 포르투갈의 국제 번호는 +351이다. �


이력서에 새 전화번호를 넣고 나서는 LinkedIn에 올라오는 일자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쪽 인턴십이든 뭐든 얼른 돈을 벌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삼촌집에서 나와서 독립을 하고 싶다.


아내와 나는 월 수입이 둘이 합쳐 3000유로 이상이 된다면 독립을 하기로 했다. 둘이 살면서 돈도 모으고 애도 낳아 기르고 싶다.


5년 뒤에는 아버지께서 정년 퇴임을 하시니, 그때쯤에는.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잘 잡아서 부모님을 모시고 포르투갈 여행을 시켜드릴 수 있지 않을까?


몇몇 눈에 띄는 일자리에 당장 지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내겐 비자가 없다. 여기서 취업을 하려면 적법하게 일할 수 있는 비자가 필요하다.


21년 한국에서 결혼을 했을 당시 대사관을 통해 포르투갈에도 혼인 신고를 했었어서, 바로 비자를 신청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와이프가 포르투갈 사람이니까, 문제없이 비자를 받을 수 있을 테지.


비자 발급에 걸리는 시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대략 2-3 달이라고 한다. 한국은 길어도 2-3주면 비자가 나오는데...


'두세 달은 꼼짝없이 백수 신세겠군.'


아내는 이곳에 도착하고부터 계속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유럽연합 내에서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일자리를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


당장 내게 우선순위는 비자 신청이다. SEF라는 기관에 전화로 비자 발급 업무 약속을 잡고 가까운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한데, SEF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요 며칠간 하루에 두 시간씩 전화를 걸고 기다렸지만, 전화 연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라인 방문 예약도 불가능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알아보니 SEF와 전화 연결이 항상 어렵다는 불만을 표하는 게시글이 여럿 보인다.


우리는 차라리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마침 Vila Real이라는 도시에 가장 가까운 SEF 지점이 있어, 내친김에 버스표를 예약했다.


...


11월 2일 목요일 아침, 비바람이 오다 말다 반복한다.


오랜만에 데이트도 할 겸, 우리는 Vila Real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SEF에 가기로 했다.


외숙모가 가본 적이 있다고 추천해 주셨다. 중국식 뷔페인데 메뉴도 다양하고 또, 1인당 14000원 정도로 가격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내는 구글맵에 나온 식당의 사진, 메뉴를 보여주며 들뜬 기색을 비췄다.


우산 하나를 둘이서 쓰고 Vila Real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을 중심가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데이트?를 해서인지, SEF 직원을 상대하기 위해서인지 와이프는 오랜만에 화장도 했다.


정거장에 서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니 버스가 금방 도착한다. 운전기사분께 이메일로 받은 QR코드를 보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토막> 결혼을 하면 좋은 점! 항상 둘이서 다니니, 버스에서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을 일이 없다. �


별안간 버스가 출발한다. 산간지방이라 그런지 길이 참 구불구불하다.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에 신나서 영상을 찍기도 잠시, 금방 멀미가 난다.


눈을 감은채 멍 때린다. 몇 차례 심호흡을 하니 메슥거림이 가신다.


와이프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에 들려고 노력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정적을 선호하게 되었다. 정적이 주는 차분함이 좋다. 무언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그 여유로움이 좋다.


물론 음악이 듣고 싶을 때는 듣는다.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 듣는다기 보다는 감상한다.


어느새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우리가 탄 버스는 Vila Real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2시가 다 되어간다. 마침 레스토랑의 오픈 시간도 그 쯤이라 우리는 첫 손님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비장한 마음으로 접시에 담을 음식들을 물색했다.


중국 음식, 포르투갈 음식, 초밥, 바비큐용 고기들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초밥을 보는 군. 역시 만만한 게 연어구나. 죄다 연어 초밥이네.'


첫 접시는 가벼운 마음으로 초밥과 고기 몇 점, 샐러드 등을 담았다. 수준 높은 맛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그리운 맛으로 먹을 만했다.


두 번째 접시는 삼겹살과 소고기 구이, 닭꼬치 그리고 볶음밥을 담았다. 기름진 음식과 콜라를 마시니 금방 배가 불렀다.


간단히 과일과 디저트를 담은 세 번째 접시까지 해치우고 나니, 더 먹으면 오히려 손해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식은 금물이다. 사실 이미 과식을 했지만.


음료수까지 별도로 둘이 합쳐 3만 원 정도.


5점 만점에 3.2점 정도의 후한 점수를 속으로 매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자 업무를 보는 곳은 2시에 문을 연다. 시간이 좀 남는다. 남는 시간 동안 뭘 할지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식당에서 사무소까지 걸어오는 길에 비바람 불어 닥쳤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던 낡은 우산이 바람에 꺾여 부러지고 말았다.


비가 오다 안 오다 하는 날씨라서, 사무소 근처 마트 앞에서 잠시 쉬었다.


새 우산을 살까 하여 마트를 둘러보았지만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라 그런지 우산이 없었다.


잠시 뒤 비가 그쳤다.


여길 또 언제 와보겠냐는 생각에 와이프에게 근처를 둘러보자고 했다.  


귀찮아하는 듯 보였지만, 껄껄 웃으며 손을 잡아끌자 실에 묶인 연처럼 딸려오는 그녀.


여자는 남자가 하기 나름이란다. (남자도 그렇다.)


한 20분 정도 마을에 있는 광장, 학교 등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절벽처럼 보이는 곳이 시야에 닿는다.


'놓칠 수 없지.'


절벽 아래 탁 트인 풍경을 보니 호연지기가 절로 솟는구나!


카메라를 들고 이러 지리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었다.


"역시 둘러보기를 잘했지?"


넌지시 물어보니 아내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2시가 다 되어갈 참이라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SEF 사무소로 향했다. 사무소는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거인들이 쓸 것처럼 천장이 높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은 참 지루한 일이다. 기약이 없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문 앞에 서 있으니 우리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2시 15분쯤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시간관념 어쩌고 하는 생각을 미뤄두고,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한다.


사무소 직원이 명단을 들고서는 리스트에 적힌 이름을 부른다. 두 명쯤 불렀을 때, 아내는 직원에게 약속을 잡지 않았는데 업무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직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사정을 설명하는 아내.


'음, 예감이 좋지 않군.'


아니나 다를까, 전화로 약속을 잡고 다시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들었다. 이 놈의 인생은 참 쉽게 풀리는 경우가 드물구나.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문을 나선 뒤, 다시 외삼촌네 마을로 가는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 돌아가는 것으로 예약했던 버스를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앞당겼다.


Vidago로 향하는 버스에서, 아내는 계속 비자 신청 약속을 잡기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운 좋게도? 대략 5번째쯤 시도한 끝에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우스운 일은, 가족 관계 비자에 할당된 남은 자리가 없어서 현재는 발급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가족 비자에 자릿 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퍽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듣자 하니 남은 자리가 다시 생기는 데에는 딱히 기약도 없고,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단다.


나는 여행 비자로 포르투갈에 체류 중이다. 여행 비자는 90일, 즉 1월 중순쯤까지 유효하다. 그 기간 내에는 사실상 가족 비자를 받을 길이 없다.


기한 내에 비자를 받지 못하면, 벌금을 물거나 추방을 당할 수 있다. 또, 향후 10년간 포르투갈을 방문할 수 없게 된다. 요행에 운명을 맡길 여유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울적한 기분으로 외삼촌네에 도착했다. 반나절 사이에 기분이 이렇게 달라져서 돌아왔다.


이상하다. 큰 일인 것 같은데 딱히 위기감이 들진 않는다.


단련이 된 걸까?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안 나네. 원래 좆된 거 같은 상황일 때 항상 들던 그 느낌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아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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