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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12. 2023

포르투갈에서 잠깐 살고 있다. (3)

돌아갈 결심

이제 한 달 뒤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포르투갈에서 비자를 얻기가 요원해진 상황에서, 귀국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 부모님은 어느 정도 반기시는 듯하다. 친구들은 뭐... 기뻐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위로해 주는 녀석들도 있다. 고맙구먼.


우리는 리스본에 있는 대한민국 영사관에 방문하여 아내가 한국에서 거주하기 위한 결혼 비자(F-6)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비자가 승인되었다. 이렇게나 쉽다니. 일처리가 빠른 한국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같은 배우자, 가족 신분임에도 포르투갈에서 떠나야 하는 내 처지가 허탈하기도 하고 뭐 그런 심정이었다.


미련 없이 인천으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당장 비행기 티켓을 구매할 자금이 부족해서 아빠 찬스를 썼다. 아, 나는 언제쯤 제대로 효도를 해볼까...


해외에서 멋진 커리어를 쌓아 금의환향을 할 계획이었는데, 실패자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이제 와서 부질없는 생각이다. 가서 열심히 살자.'


불과 얼마 전에 캐나다에서 포르투갈로 막 도착했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떠나왔던 곳, 태초마을로 되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음... 사실 가족, 친구들을 볼 생각과 한국 음식 생각에 살짝 흥분이 되긴 한다.'


11월 초부터 아내는 프리랜서로 일감을 구해 번역 및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녀 혼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이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기 위해 TEFL이라는 공인 영어 교육 자격증도 땄다. 곧 한국에 있는 몇몇 영어학원들과 화상 인터뷰도 할 예정이다.


나는 설거지, 빨래, 이불 정리, 운동, 유튜브, 글쓰기, 일자리 탐색,...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자격지심이 꼭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조각 같다. 심지어 이 착한 아내는 집안일도 조금씩 거든다.


자괴감, 미안함, 고마움 등의 감정이 마구 뒤섞여 매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산책을 나가고, 이렇게 글도 쓰기 시작한 것이다. 20대 초반에만 해도 하기 귀찮았던 설거지도 요즘에는 오히려 그릇을 닦고 헹굴 때 마음이 편하다.


자존감이 낮아진 건지, 겸손해진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둘 다라고 치자.


한국으로 돌아가면 돈을 벌 것이다. 벌어야 한다. 막상 든 생각으로는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을 하며 글을 계속 쓸 계획이었는데, 아버지와 아내는 조금 더 발전성 있는 일을 하길 바라는 것 같다. 아마 가족들이 보기에는 전자공학 4년, 소프트웨어 2년 공부한 게 아까운가 보다. 아니 어쩌면 10년, 20년 지나도 단순 노동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 걸까?


답답한 마음이 들어,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같은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락날락거리며 올라온 공고들을 아이쇼핑하듯이 뒤적 거린다. 


어차피 지금은 한국 핸드폰 번호도 없고, 당장 지원할 것도 아닌데 사실 의미 없는 짓이다. 그냥 이렇게 스크롤을 오르내리면서 보고 있으면 구직활동이라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걸까?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 같다.


차라리 이럴 시간에 이력서를 제대로 수정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이력서를 쳐다보고 있기는 싫다. 


어디에, 무슨 일에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마음이 확실하지 않아서 이력서를 생각만 해도 막막해지는 기분이다.


뭘 할지 잘 모르겠다. 이젠 정말 뭐 하나 붙잡고 할 때도 된 거 같은데, 아직까지 방황하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고등학생 때까지야 그냥 시키는 공부만 하니까 몰랐고 학부생 때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다. 몰랐다는 것은 정말 한심하고 비겁한 변명이다. 나도 알고 있다. 생계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위기감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고찰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걸까? 나는 정말 온실 속 화초로 자랐구나. 그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자 저주였다. 


어떤 일을 하게 되건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할 용기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받으니 그 용기가 어느새 꽁무니를 뺀다. 또 만용이었군. 언젠가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무뎌져서 만용도 진짜 용기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주위 사람들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내가 나에게 지치진 않을까?


감히 생각건대, 내가 나에게 지칠 일은 없다. 그 끝은 자살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난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더 확실해지는 것 같다. 난 죽을 생각이 없다.


반도체 기업? 기술 영업? 인공지능? 창업? 웹 개발? C/C++, 펌웨어 개발? 전기 기술자? 기타 등등 여러 가지 길을 고민해 보았다.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도, 2년 남짓한 경험도 어느새 가물 가물하다. 너무 오래 쉬어버린 걸까?


'뭐가 참 많구나.'


아... 그놈의 커리어. 어느 직업이든 힘든 부분은 당연히 있을 텐데. 지난날에 내렸던 결정들이 섣불렀었다는 생각을 하며 후회도 했었다. 후회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도 그만두었다. 다만 후회했을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이만큼 돌아왔는데 다음에 내릴 결정이 또 나를 돌아가게 만들까 봐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방황은 정신적 성장을 체화하는 데 있어 필연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나는 왜 이렇게 방황하는가?' 하면서 너무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물론 그런 마음의 고통 자체가 방황의 일부분이라 피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늘 그런 고통 속에서 살 것이다.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는 번뇌는 어느 순간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닌 듯하다. 우리가 시간, 자연, 인간 세상, 그리고 이 몸뚱이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없는 제약을 안고 살아가는 이상, 번뇌는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당신의 정신을 방문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하며, 타인은 당신에게 원치 않는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자연은 당신을 작고 힘없는 존재로 만든다. 애초에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은 그런 번뇌의 패턴을 파악해 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아, 그렇구나!'하고 인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라이프 스타일, 삶의 태도, 매일매일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번뇌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다.


알고 겪는 고통과 모른 체 겪는 고통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뭔지도 모르고 마신 액체에 취하는 것보다 이게 술이라는 걸 알고 마시고 취하는 것에는 같은 물리적 경험을 함에도 그 정신적 수용 과정이 다르다. 취했다가도 언젠가는 깰 것이라는 '예측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줄이는 것이 우리가 지식을 쌓는 목적 중 하나가 아닐까?


지금 글을 쓰며 깨달은 사실인데, 내가 접근을 잘못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무언가 그런 정답을 찾을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버티면서 그 일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어차피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겪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무슨 평생직장을 찾는 것도 아니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더 큰 기회가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 과정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제 이력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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