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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01. 2023

포르투갈에서 잠깐 살고 있다. (1)

정착할 계획이었는데

탈출하듯 캐나다를 떠나 포르투갈로 넘어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정리도 할 겸 이곳에 남겨본다.


캐나다를 떠나게 된 사연


23년 8월 27일, IRCC(캐나다 이민, 난민, 시민권 부서)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 5월에 컬리지를 졸업하고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신청을 했었는데, 그 결과가 도착한 것이다. 컬리지 동기들은 한 달 전부터 승인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는데, 우리만 늦어지는 것 같아 똥줄이 타던 중이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외출을 나서려던 차였지만, 만사 제쳐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와이프의 비자에 대한 언급만 있었다.


'비자 심사 결과, 승인이 거절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임시 거주 허가 자격이 만료됩니다. 만료로부터 90일 내로 다시 비자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 새하얘졌다. 거주 허가증이 없이는 일을 못하도록 되어있다. 어디든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다음날 아침, 와이프는 회사에 사정을 설명했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울고 있는 아내를 품에 안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IRCC에 전화로 문의를 해 보았지만 다시 신청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기관 앞에서 개인은 이렇게나 무력하다.


5월에 신청했던 비자의 결과가 거의 9월이 다 되어서야 나왔는데, 이래서야 언제 다시 와이프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캐나다는 기다리는 게 일이다.


우리는 캐나다에서 제대로 저축을 할 수 없었다. 딱히 흥청망청 써댄 것도 아닌데. 토론토에서의 생활비는 살인적이었다. (월세만 해도 매달 200만 원이었다.) 혼자서 버는 돈으로는 살아남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만약 둘 중 한 명이 정말 아프기라도 한다면 당장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 


시간도 재정도 여유롭지 않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내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는 안전하게 포르투갈로 이사 가는 방법을 택했다.


와이프의 퇴직금은 고스란히 렌트비로 나갔다. 나는 8월 중순부터 시작한 커스터머 서비스 일을 계속했다. 수습기간이라 언제든지 해고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직장에 캐나다를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썩 즐길만한 일은 아니었어서 빨리 그만둘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급여는 비행기 티켓과 식비등 나머지 생활비에 사용되었다. 빠른 속도로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돈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와이프는 가구와 전자 제품 등을 중고 마켓에 열심히 팔아 돈을 모았다. 당근 마켓과 페이스북이 요긴하게 쓰였다. 당장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을 해주는 아내가 참 고마웠다. 생활력이 강한 여자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3주 전,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집에 있는 물건 중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안 팔리던 물건은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남은 짐을 캐리어에 터지기 직전까지 눌러 담았다. 두꺼운 옷이 많아서 애를 먹었다. 대형 캐리어 4개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 각자 하나씩 어깨에 맨 백팩 둘. 그 모습이 꼭 2년이 조금 넘은 캐나다 살이에 대한 성적표 같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캐나다를 떠났다. 200만 원은 2인 가구가 포르투에서 대략 한 달 정도 지낼 수 있는 금액이다. 


포르투갈로 떠날 계획을 세울 때, 아내는 포르투갈에 있는 친척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며 우리 부부가 지낼 곳을 알아봤다. 외가 쪽 친척들 모두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분노하며 걱정해 주었다. 


그러던 와중에 와이프의 외삼촌은 자기 집 반지하에 남는 공간이 있다며, 지내게 허락해 주셨다. 정말 다행이다. 아내와 나 둘이서 방을 구해 살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까.


외삼촌 댁은 Vidago와 Oura라는 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포르투갈 북쪽 산골 마을이다. Porto에서 내륙 지방으로 두 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지난여름 방학 때도 며칠 동안 놀러 간 적이 있다. 이제 당분간은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포르투갈의 따뜻한 날씨를 기대하고 갔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포르투갈 북쪽에는 2주 동안 장마가 왔다. 그와 함께 기온이 뚝 떨어졌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온 줄 알고 반겨주는 걸까.


열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우리는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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