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
세주아니 정글로 3연패를 했다.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면 질 때까지 한다. 지난 나는 3일 동안 하루에 한 판 씩 했다. 그 말인즉슨 3일 내도록 한 판을 못 이겼다는 말이다.
오늘이 진짜 너와 끝이라며. 짜증스럽게 헤드폰을 벗어던지고는 프로그램 추가/제거 창을 띄웠다. 리그오브레전드 삭제. 라이엇 삭제. 거칠게 클릭 클릭.
이번엔 얼마나 갈까? 이런 식으로 롤을 지웠던 적이 이제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 내 젊음이여! 짜릿한 승리도, 허망한 패배도 이제는 안녕이다.
2012년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2023년의 끝자락까지. 우리는 참 오랜 시간 함께 했구나. 누가 알았겠니, 네가 야동만큼이나 끊기 힘들 줄은.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적어도 너와의 이별을 글로 써 내려간 적은 없거든. 이제 네가 생각나더라도 내가 쓴 이 글을 떠올릴 수는 있겠지.
너와 헤어지는 이유는 내가 연패를 해서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까워서도 가 아니야. 너와 어울리는 동안의 나의 모습이 싫기 때문이지.
사실 나는 알고 있었지. 너와 계속 함께하는 이상, 더 나은 모습의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건 너와의 이별이지만, '너와 어울려 놀던 나'와의 이별이기도 해.
어째서 이렇게나 오래 걸렸을까. 어쩌면 그냥, 원래 10년 정도 걸리는 일이었던 것 일지도.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지. 사람마다 이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그저 나에게는 10년 정도 걸렸던 것뿐이야.
너와 헤어진다고 해서 내가 심심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없어. 너와 함께 해서 얻을 수 있던 건 20대 친구들과 함께 했던 향수, 다음 게임을 시작하면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짤막한 즐거움, 패배 이후의 불쾌감, 그리고 보물 상자를 까고 나온 아이템이 와드 스킨에 대한 실망감 정도뿐이니.
그렇다고 내 삶의 질이 한 번에 큰 폭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너에게 낭비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꾸준히 잘 쌓아 나간다면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겠지.
이제 매일 글 쓸 수 있는 핑곗거리가 하나 더 생겼구나.
재밌었다 LoL아. 너 내가 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