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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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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23. 2023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방구석 철학자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

대학교에서 전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다 보면 한번쯤 철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철학이라는 게 따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철학자 아니겠는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뭐, 이유야 각자 찾기 나름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잘 죽기 위해서'인 것 같다.


무슨 드라마에 나온 대사였던 거 같은데, 거기서는 '잘 사는 방법'이나 '잘 죽는 방법'이나 같은 말이라고 했었다.


왜 그런 걸까?


'잘 사는 것'은 살아 숨 쉬는 동안에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면서 풍요롭게 사는 것이고, '잘 죽는 것'은 죽을 때 후회 없이 눈 감는 것일 테지. (내 장례식에 몇 명 올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아, 아마 잘 사는 것에 초연하게 되면, 잘 죽는 것이나 잘 사는 것이나, 둘 다 같은 말이 되는가 보다.


그렇다면, 산다는 건 어떤 것이고, 잘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는 것은 고통이고, 잘 죽으려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시계추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삶은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럽다


'불편한 행복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것이다."


아, 우울해라. 


지루함, 권태롭다는 느낌마저도 우리는 괴로워 못 견디니, 그야말로 삶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고통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인간은 늘 무언가를 욕망한다. 살아 숨 쉬는 내내.


심지어 종류도 가지가지다. 


먹고 자고 싸는 생리적인 문제나, 안전함, 소속감, 애정과 존중을 갈구하는 것 등등의 '결핍 욕구'가 있는가 하면, 호기심, 예술, 자아실현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성장 욕구'도 있다.


게다가 어느 순간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그런 행복감은 언젠가 반드시 휘발되어 버리고, 혹은 역치가 올라가서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역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것은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적응'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영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장담컨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낙원에 가더라도 금세 인간들은 권태로워하고 말 것이다. 


쉽게 이기기만 하는 게임을 누가 플레이하겠나? 


고통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다. 더 많은 것을 바랄수록 우리는 더 큰 노력이나 대가를 치러야 하니, 고통은 욕망의 필연적인 결과인 셈.


즉,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고통을 겪을 운명에 내동댕이 쳐진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인정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결론 난 사실은 얼른 받아들이고, 이를 다른 문제를 판단할 근거로 삼으면 될 일이다.


아 물론 대체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 인생 전체가 다 고통이 아니라 어느 특정 시점에는 대체로 행복했던 시기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가 아이-어른-늙은이의 생애 주기를 겪으며 항상 행복할 수는 없어.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굳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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