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
대학교에서 전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다 보면 한번쯤 철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철학이라는 게 따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철학자 아니겠는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뭐, 이유야 각자 찾기 나름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잘 죽기 위해서'인 것 같다.
무슨 드라마에 나온 대사였던 거 같은데, 거기서는 '잘 사는 방법'이나 '잘 죽는 방법'이나 같은 말이라고 했었다.
왜 그런 걸까?
'잘 사는 것'은 살아 숨 쉬는 동안에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면서 풍요롭게 사는 것이고, '잘 죽는 것'은 죽을 때 후회 없이 눈 감는 것일 테지. (내 장례식에 몇 명 올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아, 아마 잘 사는 것에 초연하게 되면, 잘 죽는 것이나 잘 사는 것이나, 둘 다 같은 말이 되는가 보다.
그렇다면, 산다는 건 어떤 것이고, 잘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는 것은 고통이고, 잘 죽으려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시계추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불편한 행복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것이다."
아, 우울해라.
지루함, 권태롭다는 느낌마저도 우리는 괴로워 못 견디니, 그야말로 삶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고통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인간은 늘 무언가를 욕망한다. 살아 숨 쉬는 내내.
심지어 종류도 가지가지다.
먹고 자고 싸는 생리적인 문제나, 안전함, 소속감, 애정과 존중을 갈구하는 것 등등의 '결핍 욕구'가 있는가 하면, 호기심, 예술, 자아실현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성장 욕구'도 있다.
게다가 어느 순간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그런 행복감은 언젠가 반드시 휘발되어 버리고, 혹은 역치가 올라가서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역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는 것은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적응'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영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장담컨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낙원에 가더라도 금세 인간들은 권태로워하고 말 것이다.
쉽게 이기기만 하는 게임을 누가 플레이하겠나?
고통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다. 더 많은 것을 바랄수록 우리는 더 큰 노력이나 대가를 치러야 하니, 고통은 욕망의 필연적인 결과인 셈.
즉,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고통을 겪을 운명에 내동댕이 쳐진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인정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결론 난 사실은 얼른 받아들이고, 이를 다른 문제를 판단할 근거로 삼으면 될 일이다.
아 물론 대체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 인생 전체가 다 고통이 아니라 어느 특정 시점에는 대체로 행복했던 시기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가 아이-어른-늙은이의 생애 주기를 겪으며 항상 행복할 수는 없어.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굳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