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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26. 2023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방황과 회의 그리고 의문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꿈>


토론토에서 살 때, 범블(Bumble)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친구 한 명을 사귀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줘서 같이 몇 번 만나다 보니, 나를 포함한 4명이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우연스럽게도 구성원들의 면면이 독특했다. 필리핀, 홍콩, 일본, 한국... 각각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인 네 명의 아시아인들이다.  


그때는 한창 유튜브 같은 부업에 관심이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같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운영해 보자고 했고, 우리는 몇 번 모여서 영상을 찍곤 했었다. (채널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한 날은 다 같이 한국식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들 한 명씩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짧은 인터뷰를 했다.  


"너는 꿈이 뭐야?"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는 거."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꿈.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나 그런 거 없어?"  


"부자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부자가 꿈이야."  


"그래, 그럼 부자가 뭔데? 부자가 되고 나면 뭐 할 건데?"  


"그냥 한 대충 100억 정도 있는... 여행 다니고 좋은 집에 살고 그런 거."  


세 명 모두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는 카메라를 껐다.


...


<소유냐 존재냐>


나도 돈이 많으면야 좋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안 그렇겠나? 좋은 차, 명품 시계,... 내가 부자가 된다 해도 그런 사치를 부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겠다마는, 이때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 온 은혜를 갚고 싶기도 하고, 또 가끔 외식을 가서 메뉴판에서 가장 싼 음식부터 찾는다거나 할 때는 지긋지긋한 심정이 들고야 만다.


며칠 전에는 이번 크리스마스 날 포르투갈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아내와 함께 쇼핑을 다녔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 것을 보면, 분명 경제력이 내 존재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 찌질한 놈!'


물론 아내가 따로 눈치를 주거나 한 적도 없고, 이건 우리 부부가 같이 선물하는 거라고 넌지시 나에게 말해주었지만, 착잡한 심정을 물리칠 수가 없다.


그런 주제에도 여전히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경제적 활동이야 하겠지만, 더 많은 수입을 제1순위로 두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나는 나답게 살다가 죽으련다.


누군가는 '그만큼 벌어보고나 말해라!'와 같은 말을 하겠지. 하지만 '얼마나 소유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의의를 두고 살려고 한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 하지만 소유를 통해서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오히려 소유를 덜어낼수록 존재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자본주의 경쟁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그만큼' 벌려면 그야말로 인생을 걸어야 한다. 돈이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본질적으로 끝이 없는 경쟁이다. 그냥 미사여구가 아니라 정말 끝이 없다. 당신은 어디쯤에서 만족할 것인가? 스스로 만족하거나 포기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어떻게 보면 나는 경쟁의 출발선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해 버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정해 놓은 '잘 사는 것'의 기준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는 것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로부터 행복을 좇곤 한다. 소유는 눈에 드러나는 실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고민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고민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가장 직관적인 선택지를 자연스럽게 고르는 것이다. 인간이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은 생명체로써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광고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모습은 세뇌에 가깝지 않나. 특히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살아야 정상인 듯 구는 한국의 정서는 인스타그램과 정말 찰떡궁합이다. 나도 타인을 통해 '학습된 선망'이 내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명품 의류, 스포츠카, 오마카세, 호캉스, 해외여행, 건물주... 소유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물질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참 공허한 질문일 수 있겠다.


내 생각에 존재의 본질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하는 가'이다. 기억의 실체는 나와 대상과의 관계이며, 이를 시간순서로 늘어놓으면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소유의 한계가 드러난다. 나와 물질과의 관계는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잠깐의 느낌, 혹은 유용함에서 오는 만족감 정도가 전부일 테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내가 대변하고자 하는 가치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정성스럽게 드러내는 것. 


어렵게 말해서 미안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라는 말이다. 혹은, 하고 있는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가며 정성을 다해 일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한국을 떠나 있던 덕분에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표현하고, 내가 살아갈 땅을 조금씩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 두루뭉술하고 오글거리지만 뭐 어떤가. 그게 낭만인 것을.


당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 무엇이 중한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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