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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29. 2023

사는 게 고통이라면 굳이 아등바등 살 이유가 뭐지?

너, 고통을 즐기는 편인가?

누구든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는 관계로, 갑자기 시작된 삶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 또 나름의 답을 찾고 난 뒤부터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삶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은 방황, 회의, 그리고 의문이었구나.


나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 건지 모르겠다.



<시계추에서 뛰어내려라>

고통과 권태를 반복하는 삶에서 벗어나려면 한 가지 프레임을 깨 부숴야 한다.


'진정한 나를 찾으면 행복할 것이다. 행복한 나일 때가 진정한 나다. 삶의 목적이 곧 행복이요, 고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는 비정상이고 최대한 고통을 피해야 한다.' 이런 명제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에 골인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콘셉트. 이게 현대인들이 개인의 행복에 몰두하는 이유가 아닐까?


평화롭고 안정된 삶은 신기루다. (사실, 어쩌면 내가 '저건 신포도 일거야' 하는 여우와 다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우리를 '시계추'에 올라타게 만든다. 행복이란 것은 결국 느낌이고, 느낌은 역치가 존재하는 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방황의 원인인지도 모른 체 나는 헤매고 있었다.


이제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사는 게 고통이라면 굳이 우리가 이렇게 아등바등 살 이유가 뭐지?'


행복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망치는 대신 삶의 무게를 책임지는 거다. 오늘 해야 할 일 을 하는 거다. 미루고 싶은 방청소를 시작하는 거다.


내가 가진 용기의 본질은 포기다.

늘 현실에서 도망쳐왔다.

달아나도 계속 쫓아오는 현실.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더 이상 도망치기를 포기한 것

현실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내게 용기란 책임감이며

싱크대에 쌓인 접시를 설거지하는 것,

자고 일어난 뒤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

혹은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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