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을 만나고, 내 세상이 부서졌다.

0부터 다시 시작한다

by 신형중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 조금 특별하다면 고향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정도? 실컷 수다를 떨다가시간이 되어 그 분을 만나러 갔다.


별 기대는 없었다. 원래 알던 분이자 어머니의 지인이었다.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현실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나날을 어머니에게 실토했는데, 한 번 연락해보라고 하신 게 이 만남의 연유다.


카페에 먼저 도착해 차 한 잔을 시켰다. 카페인에 예민해 커피는 안 되고, 건강을 생각해 단 음료도 싫었다. 고심 끝에 고른 카모마일 티. 이 돈 주고 사먹어야 하나 싶어 고민했지만, 마땅한 대책도 없어 5분 넘는 고민 끝에 고른 음료. 고민하던 시간 보다 빠르게 음료가 나오자 후회가 밀려온다. 더 나은 선택도 없으면서.


자리를 잡고 음료를 마신다. 분명 얼음 적게 넣어달라고 요청했는데 한가득 들어있는 덩어리들. 귀찮음과 말해 뭐하나 싶어 그냥 넘긴다. 맛도 없어서 그런가 괜시리 언짢은 기분.


그렇게 혼자 에너지를 소모하는 도중 도착하셨다.


"안녕하세요".


낯가림과 무정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들어진 나는 너스레를 떨지 못한다. 심지어 반가워도 선뜻 표현하지 못할 정도. 별명이 로봇이니 말 다했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어 선생님이자 천주교 세례명이 레오셔서, 그 분을 레오쌤이라 부른다.

쌤이 물었다.


"그래, 보자고 한 이유가 뭔대?"


서울 살이의 답답함, 취업했지만 맞지 않는 환경과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얘기를 최대한 간결하게 전했다.


이후 내 얘기를 말할 타이밍은 없었다. 레오쌤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친 후, 나에게 미안함을 토로하셨다.


"내가 오늘 피정갔다 오느라 피곤해서 들어줄 힘이 없네." "내 얘기만 하게 되어 미안하다. 이해좀 해주라."


-과거 이야기의 전문

본인은 무척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해왔으니 특히 더 예민했다고.


(내가 깨달은 바로는 예민한 이들은 사람을 잘 상대하지 못한다. 말투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미세한 표정 변화를 느끼는데, 이게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 대화에서 타인의 가식이나 허세가 느껴져 사람이 질릴 때도 있다.)


거기에 자존심도 쎈 사람이었다. 동생이 하는 것은 절대 안 했다고 한다. 아이큐가 150에 가까운 동생은 뭘 하든 잘했기에 비교되기 싫었다고 하셨다. 그에 비해 본인은 130정도. 낮은 아이큐는 아니지만, 비교될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 책을 피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못봤는데 영재였던 동생이니까. 뉴스에서 들은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흡수했다고 한다.


꽤 좋은 머리+ 예민함. 이 조합은 관계에 있어 최악이다. 사람들이 무식해 보이고, 왜 저럴까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차라리 혼자가 된다. 모두를 왕따시킨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증명해왔던 순간들이 있기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하셨다. 사실 왕따는 나였다는 뉘우침과 함께.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본인이 맞다는 아집. 결국 이게 옳을거라는 자존심. 예민함도 물론 있었지만, 본인의 화조차 예민함으로 포장했던 나날들. 사람들의 별거 아닌 행동에도 짜증이 나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더욱 더 혼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악순환의 굴례처럼.


이 것들을 깨닫는데 수십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제는 사람들과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계시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예전에는 조금만 시끄러워도 화를 내던 과거. 그러나 이제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잘 가르친다고 하신다. 공부를 강요하는 환경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단순 공부를 시키는 역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교감하고 계셨다.

아이들도 이를 안다고 한다. 이제는 선생님이 화를 내도 화내는 게 아니라는 걸. 본인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말과 표정 속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거 같다.


같은 화인데, 받아들이는 이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


이제는 욕먹을 각오가 되어있다고도 하셨다. 소문이 안 좋은 한 아줌마가 있다. 그 분이 성당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거친 언어,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 모두가 싫어하고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레오쌤은 그 분을 일부러 만나러 갔다. 왜 그런 사람을 만나냐고 100이면 100이 말릴 인물을.


이유는 그 직위에서 운영하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쨌든 그 자리를 오랫동안 해왔으니 배울 게 있지 않겠냐고 말리는 사람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말리는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는 사실과 함께.


이제는 20%를 배우기 위해 모두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찾아 나선다. 단 10%, 아니 5%라도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질문도 던지셨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그걸 100이라고 치자. 나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


답은 0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하지 않는다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다고 돌려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주는 것만으로 이미 나를 가득 채웠으니까, 그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한다고. 현자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내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왜 귀인이냐고?


이 모든 게 지금의 나여서. 정확히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어서 충격적으로 듣고 있었다.


자신감인줄 알았던 생각과 행동 들이 자만이자 무지였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회사 사람들이 답답하고,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한심함을 지닌 내 모습이 비쳐진다.


대화 속에서 보이는 무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웃는 수많은 허영이 뇌리를 스친다.


독립심이 아니라 상처받을까 두려워 거리를 둔 것임을 깨우쳤다. 사람들의 표정 변화를 보고 지레 겁먹고 마주하지 못한 거였다. 미운 소리를 들을까 싶어 조금만 낌새가 보여도 서둘러 대화를 마친 거였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내 선택이었다는 착각 속에서.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화로 가득찬 사람이었음을 뉘우친다. 길에서 담배 피는 사람을 보고, 생각 없는 사람이라며 속으로 씩씩 거리던 불과 어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상의 대화를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해 피하고 업신 여기던 내 모습을 관찰한다. 분명 같은 공간인데 스스로 어둠을 드리우는 철없는 상황을 펼쳐본다.


책좀 읽었다고 세상을 아는 것 마냥 생각했던 나날들. 머리 좀 좋다고 혼자 해결하려던 욕심들.


무엇보다 겸손한 척 했지만, 사실 내가 머리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거라는 최악의 오만함.


그렇게 그날, 내가 쌓아온 성이 무너졌다. 혹여 누가 무너트릴까 혼자 애쓰며 지켜온 성. 모래로 쌓아놓고 혼자 멋지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던 삶.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성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실제 바람만 불어도 조금 씩 날아갔기에 더 예민하게 지켰던 성벽. 애쓰며 지키던 그 병사도 어쩌면 모래로 만들어졌을지 모르겠다.


29세, 다시 태어나자.

그리고 세상을 다시 배우자고 다짐한다. 어린 아이처럼.


모두에게 배울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10%를 가져간다. 미움받을 용기를 갸져야겠다 10%를 위해. 아니 1%라도 필요하다 생각하면 찾아간다.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하늘 꼭대기에 있는 자아를 끌어내린다. 아니 땅을 판다. 동등한 위치도 아닌, 지하에서 올려다 볼 수 있도록.


3천만원을 사기 당해도, 당했다는 사실에 울분을 토하는 게 아니라 툭툭 털고 일어서는 마인드. 그 어떤 동요 없이 다음 할 일을 하는 초연함. 2년 전에 당했던 10만원 짜리 사기가 가끔 떠올라 마음에 불을 집히는 나와 비교되는 그 단단함.


쌤을 보며 깨달았다. 이게 그릇이구나. 10억, 100억을 다루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어떤 사람이든 담을 수 있는 마음 가짐 혹은 상태. 이게 진짜 깊이구나. 나는 주변조차 품지 못했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사람을 얻는 자, 천하를 호령한다는 옛말이 그 분을 보며 떠오른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을 호령하시지 않을까. 영어 강사로 외국어도 되니 진짜 천하까지 가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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