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공부하다 느낀 삶의 깨달음

진리는 단순한다. 그러나 과정이 복잡하다.

by 신형중

니체를 공부하다 깨달음을 얻었다. 니체에 대한 깨달음 아니고 삶에 대한 무언가이다. 근데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 말할 수 없다. 아니 설명이 불가능하다.

불교에서도 말한다. 깨달음을 얻은 것 얻은 자만이 알 수 있다고. 그걸 설명하는 순간 역설이 되어버린다. 어떤 말로 형용되는 게 아니고, 무언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굳이 말해보자면 흐름?이라 하겠다.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그저 유유하다. 사실 철학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리를 말하라했더니 흐르는 게 진리라니. 철학자들이 극대노하고 들고일어날 것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그게 진리인 걸 뭐 어쩌라고. 유의 진리. 진리의 흘러감. 그저 무수히 변화하지만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 그 상태. 그게 진리다. 그럼 그 본질은 어떻게 왔느냐는 인식론적 물음이 따라올 수 있겠다. 모른다. 그냥 흐른다.


니체를 사유하다 깨달음을 얻었지만, 니체를 받아들인 건 아니다. 니체가 시작 있었을 뿐이다. 니체를 설상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건 니체의 철학에 어긋나는 행위다. 니체의 사상이 그러하다.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부정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진짜 니체 철학을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니체를 자세하 알진 못 한다. 그냥 그게 니체임을 알 뿐이다.


어쨌든 삶은 먼 길을 떠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리는 처음에 있다. 돌고 돌며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 그 안에서 폭풍우를 마주하고 죽을 뻔하며 살아가는 게 삶이다. 그리고 마침내 태초로 다시 돌아와 모든 건 허상이었나 싶은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런 순환이 인생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아프고 겸허한 사람은 알 것이다.


진리는 늘 단순하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다. 그게 우주의 질서다. 모든 건 다 순환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런데 인간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 안에서 고통받는 건 자연도 아니오 어떤 세계도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발전한다고 느끼지만, 고통을 창조한다.

우주의 질서에 의해 흉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자연은 그걸 받아들인다. 인간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질서를 거부했고, 식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질서에 맞게 살았지만, 그걸 거부하고 더 많은 노동을 감행했다. 자연의 주기에 의해 밤이 되면 자고 낮이 되면 생활해야 했지만 전구를 발명시키며 또 다른 고통으로 빠져들었다.

이제 인간의 개체는 이제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달렸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질서를 거부한 인간에게 정신병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질서는 그에 맞게 유지된다. 새로운 종이 생기고 어떤 종은 멸종한다. 인간이 세상을 바꾸지만 자연도 그에 맞게 변화한다. 그게 삶이다. 어떤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질서가 있다.

그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건 세상이 아닌 나다. 질서에 맞게 변하는 진리 속에서 우리의 태도만 바꿀 수 있다. 먹이 사슬을 거부할 수 없듯, 진리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 언젠가 죽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빨리 죽는 이들도 생겨난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인정하고 편하게 살다 가면 된다.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 하니 고통이 생긴다.

그저 흘러가는 데로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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