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이야기
실제로 주변에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들 한다. 또 흔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일을 당하나" 내지는 "나는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하곤 한다. 전생의 원수는 현생의 부부로 연이 맺어진다고 농담도 한다. 의미심장하다.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어가지만, 정말로 전생이 있다면 어떨까?
영화 <인피니티 infinite>(2021)는 2009년에 출간한 에릭 메이크란츠(D. Eric Maikranz)의 소설 <The Reincarnationist Papers 환생론 논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SF, 스릴러 영화다. 미국에서는 원래 극장 개봉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수차례 연기되다 결국 OTT인 파라마운트+로 공개되었다.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은 없었고 2021년 9월 20일 KBS2에서 최초 방영됐다. 그 후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감독이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이렇게 힘들게 개봉됐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에반 마이클스'(마크 월버그 분)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이런저런 일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환각으로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 의사에게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고 그 약값을 벌기 위해 어떻게 배웠는지 알지 못하는 재주를 이용하여 돈을 번다. 그는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일본도를 훌륭하게 만드는 등 기이한 능력을 보인다.
그러던 중, 그런 그를 찾아 나선 사람들 간의 소동으로, 자신과 같은 '인피니트'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인피니트는 수 세기에 걸쳐 자신의 모든 전생을 기억하며 환생하는 불멸의 존재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뒤에서 우리 같은 머글들을 조종해 온 비밀 조직이기도 했다.
인피니트는 두 개의 분파로 나뉜다. 당연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능력을 인류를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 '빌리버'이다.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 모든 생명을 파괴하고 환생의 고리를 끊으려는 '나힐리스트'이다.
에반은 자신이 과거 인피니트의 중요한 인물인 '드레드웨이'었으며, 끝없는 환생에 싫증이나 아예 인류를 없애려고 하는 나힐리스트의 수장인 '배서스트'(치웨텔 에지오포 분)의 궁극의 무기인 '에그'를 막을 열쇠를 쥐고 있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는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인류의 미래를 건 목숨을 건 싸움(그래봐야 또 환생한다)에 뛰어들게 된다.
포스터에 금색으로 등장하는 무한대 기호는 환생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한 듯하다. 액션 영화답게 환생에 대한 철학적 고찰보다는 액션신이 볼만하다. 어떻게 보면 끊임없는 환생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같기도 하지만, 결코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의 연속일지도 모르다. 시간여행이나 순간이 반복되는 루프영화 장르와는 약간 다르다.
당연히 환생은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하려고 시도를 해왔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알려진 인물은 버지니아 대학교 의과대학의 정신과 의사였던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 1918-2007) 박사이다.
스티븐슨 박사는 40년 이상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전생을 암시하는 사례(cases suggestive of reincarnation)"를 3,000건 이상 수집하여 연구했다. 특히 2세에서 7세 사이의 어린아이들(전생의 기억이 아직 남았으리라 여겨지는)에게 집중했다. 그의 연구는 다음의 원칙으로 진행했다.
아이의 주장이 외부 정보에 의해 오염되기 전에 최대한 어릴 때 빨리 진술을 기록했다. 그리고 최면이나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전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례에 집중했다. 아이들이 말하는 전생의 이름, 가족, 거주지, 사망 원인 등을 추적하여 실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지도 대조했다. 또한 많은 사례에서 아이들은 전생에서 입었던 상처와 관련된 위치에 비슷한 모반이나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아이의 몸에서 총알이 들어간 위치와 나간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모반이 있는 경우를 찾아 기록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자신의 연구가 환생의 '결정적 증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암시하는(suggestiv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하지만 자신의 사례들이 환생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는 주장 했다. 즉, 유전이나 환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이들의 특이한 행동,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특징들이 전생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이야기 다.
그의 대표 저서인 <환생을 암시하는 20가지 사례(Twenty Cases Suggestive of Reincarnation)>와 <환생과 생물학(Reincarnation and Biology)> 등은 이러한 연구 결과이다.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는 당연히 주류 과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연구자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을 제쳐두고, 연구가 일화적 증거에 의존하고, 사례 수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기억의 오염 가능성, 아이들의 이야기가 부모의 암시나 우연의 일치, 그리고 환생을 믿는 문화권에서 사례가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 등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환생을 안 믿는 문화권에서는 환생을 인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인간 의식의 본질과 사후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초심리학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슨 박사는 평생에 걸쳐 방대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전생'이라는 비과학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주제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에서 '환생'은 핵심적인 믿음이며, 그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승계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고위 라마가 열반에 든 후, 그의 의식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현재의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가 환생자로 인정받는 과정은 매우 유명한 일화다. 1933년,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환생자를 찾기 위한 수색대가 조직되었다. 수색대는 다음과 같은 여러 징조를 따라 움직였다.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이 안치된 방향이 동쪽을 향하도록 놓였으나, 그의 얼굴이 기적적으로 북동쪽을 향했다는 이야기와 고위 라마가 성스러운 호수인 '라모이 라초'에서 북동쪽 지역의 한 농가에 대한 환영을 본 것이다.
이러한 징조들을 따라 수색대는 암도 지역의 한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라모 톤둡'이라는 어린아이를 만났다. 수색대의 지도자는 하인으로 변장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그를 보자마자 "세라 라마"라고 부르며 알아봤고, 그의 목에 걸린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염주를 달라고 했다.
결정적인 시험은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들을 가짜 유품들과 섞어놓고 아이에게 고르게 하는 것이었다. 어린 라모 톤둡은 망설임 없이 진짜 유품들을 골라냈고, "이건 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 그는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텐진 갸초'라는 법명을 받게 되었다. 유물론적인 공산중의인 중국 입장에서는 환생하는 달라이 라마는 정말 귀찮은 존재가 분명할 것 같다.
이처럼 환생은 영화적 상상력의 소재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달라이 라마의 사례처럼 한 문화권의 역사와 정신을 이어가는 중요한 실제적 제도로서 기능하기도 하다. 이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의식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져 준다.
매번 더워지는 여름이 반복되는 것이 작게나마 환생을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런 환생을 없애는 방법이 우리가 모두 죽어 환생의 대상이 될 새로운 신체의 탄생을 막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심각해도 말이다.
이생에서는 틀렸지만, 다음 생을 기약하고, 이번 생을 막살면 자칫 다음 생에 더 미천한 존재로 환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서 지난 생에 뭘 했었는지 떠올려 보는 것도 삶을 사는 의미 있는 방법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떠올라도 큰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 이번이 우리의 첫 생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