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반암마을은 과연 십승지인가?

by 전영식

올해 가을 단풍은 아무리 별로라지만, 고창 선운사 주차장은 인산인해였다. 무료주차장이라 사람들도 엄청 몰렸고, 무료라서 관리에 신경을 덜 쓰는 느낌이었다. 형광 조끼를 입은 관계자들이 분투를 하고 있지만, 주차장은 이미 만차고 들어오려는 차를 막지 못했다. 결국 주차한 차와 주차할 차가 뒤엉키고, 그 사이를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비집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차 색상과 관광객의 옷이 알록달록해서 단풍처럼 보였다.


이런 아비규환의 절집 근처를 1km만 벗어나면 풍천터널이 나온다. 풍천장어처럼 미끈하게 잘 생긴 한가한 터널을 지나면 고립무원의 조용한 세상이 펼쳐진다. 어찌 저 너머에 무지막지한 주차전쟁이 벌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긴 진정 환란을 피할만한 곳인가 보다.


반암마을


공소만으로 흘러들어 가는 주진천(인천강이라고도 함)을 따라 주위에는 200~300m 정도의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바위들이 상스럽지 않다. 터널에서 나와 주진천 왼편에 자리 잡은 마을이 반암(盤岩, 소반 바위) 마을(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이다. 반암마을은 화산력응회암과 유문암으로 만들어진 큰 바위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이 바위산체는 크게 병바위, 전좌바위, 소반바위 등으로 나뉜다.


호리병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의 병바위는 하부층인 화산력응회암이 풍화에 약해 먼저 침식되고 상부의 유문암이 남아 있는 형태이다. 이는 대만 예류지질공원의 여왕바위와 같은 메커니즘이다. 두 바위는 언젠가는 현재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병바위는 서향을 하고 있어 아침보다는 해가 넘어가는 오후가 보기에 좋다. 남서쪽에는 풍화의 결과인 타포니가 발달해 있다. 꼭대기까지 등산로가 나있다. 전좌바위와 분리되어 있다.


병바위 일대 탐방로 안내판


선인봉(어딘지 알 수 없음)의 신선이 반암 잔치집에 와서 술에 취해 자다가 잠결에 술상을 발로 걷어차, 술병은 병바위가 되었고 술상인 소반은 굴러와 소반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풍수적으로 ‘금반옥호 선인취와(金盤玉壺 仙人醉臥)’, 즉 금 소반에 옥 술병을 차려놓고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 있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이야기된다. 2021년 국가명승에 지정되었고 전북서해안지질공원의 지질명소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지질공원에 등재되어 있다.

단풍이 한창인 병바위 ⓒ 전영식
병바위 중간 부분에 구멍이 움푹 파진 타포니 구조가 눈에 띈다. ⓒ 전영식

두암초당


병바위에서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두암초당(斗巖草堂)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시묘살이를 했던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의 정성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만들었다. 아산초등학교 뒤쪽 전좌바위 중턱에 굴을 파고 그 안에 초당을 설치한 바위 굴 누정이다. 신묘한 위치는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들다. 건물은 앞이 3칸, 옆이 1칸으로 팔작지붕이다. 이곳에서 김소희(1917~1995) 명창이 득음을 했다고 한다.



유문암 암벽이라 굴을 파기는 비교적 수월했을 것이다. 두암초당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빼어나다. 토양이 좋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고 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평온한 분위기다.


선운사 주변 유문암의 기원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약 8600만 년 전)의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선운사 화산암체는 주로 유문암(流紋岩, rhyolite)과 응회암(tuff)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문암은 규장질(SiO2) 함량이 많은 화산암이다. 석영이 20~60%, 사장석이 35~80%, 알칼리장석이 15~65%를 이룬다. 아그마에 규장질 성분이 많을수록 폭발적인 분화를 한다.


이 지역의 유문암은 유동성이 있는 용암류로 나타나기도 하고(유대 구조), 때로는 응회암층을 관입하거나 피복하는 형태로도 발견된다. 장석, 석영, 흑운모 등의 반정을 포함하며, 독특한 구상 구조(spherulitic structure)가 형성되기도 했다. 유문암은 현무암에 비해 실리카 함량이 높아 점성이 크고, 주로 대륙 지각 환경에서 지표 근처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좌측에 병바위, 가운데 전좌바위가 보인다, ⓒ 전영식


중생대, 특히 백악기 동안 고태평양판(Izanagi plate, 이후 태평양판)은 현재의 일본 열도 위치에서 서북쪽 또는 북쪽 방향으로 유라시아판 아래로 비스듬히 섭입(subduction)했다.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섭입 하는 수렴형 판경계(Convergent Plate Boundary)에서는 맨틀 내로 끌려 들어간 해양판의 함수 광물에서 빠져나온 물이 상부 맨틀의 용융점을 낮추어 마그마를 생성한다. 이 마그마가 상승하여 대륙 연변부에 일련의 화산호(volcanic arc)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 서남부는 당시 대륙 연변부 화산호(continental margin arc) 시스템의 일부였다.


동북아시아 백악기 화산활동의 분포, 출처: 한국연구재단, In-Chang Ryu et. al., 2017


백악기 당시에는 판의 섭입 각도 변화(초기 평탄 섭입에서 이후 경사 섭입으로의 변화)와 함께 한반도 내부에 좌수향 주향 이동 단층(sinistral strike-slip fault) 시스템이 발달했다. 이러한 지각의 인장력과 압축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수의 퇴적 분지(예: 경상 분지, 해남 분지)가 형성되었고, 마그마의 상승 통로를 제공하여 광범위한 화산 활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 화산 활동은 주로 안산암에서 유문암에 이르는 다양한 성분의 화산암과 화강암질 심성암의 관입을 동반했다. 이는 대륙 지각 물질이 마그마 생성 과정에 생성된 마그마에 녹아들면서 광범위하게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정리해 보면 선운사 근처의 유문암은 중생대 백악기 당시 한반도가 태평양판의 섭입으로 인한 대륙 연변부 화산호 환경에 위치했기 때문에 형성된 지질학적 산물이다. 현재 일본 열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질현상이 백악기에는 한반도 서남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화성활동이 일어났다. 이후 고태평양판의 섭입각도가 바뀌면서 화산활동의 위치는 점차 일본열도로 옮겨갔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반도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약 2.5억 년 전~2.3억 년 전)이다. 이때 북중국 강괴(North China Craton)와 남중국 강괴(South China Craton)가 충돌하면서 현재의 한반도를 이루는 기반암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 증거로 2000년대 초반 홍성 및 오대산 지역에서 발견된 트라이아스기 에클로자이트(eclogite)를 든다. 트라이아스기 후기 태평양판의 섭입이 시작되어 이후 백악기에는 대규모 화산활동과 화성암(대보 화강암 등)의 관입 및 경상 분지 같은 퇴적 분지 형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 후 신생대에는 동해가 열리면서 일본 열도가 분리되었고, 한반도의 동쪽 부분이 융기하여 현재와 같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징(동고서저)이 형성되었다.


십승지 반암마을?


병바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산을 돌아가다 보면 갑자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타나고, 그 옆에 '천하제일명당 정감록십승지 반암풍수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정감록 십승지 중 '고창 아산 반암마을(호암마을)'이 십승지에 포함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었다. 기존에는 전북에서는 무주 무풍, 부안 변산, 남원 운봉 등이 십승지로 알려져 왔으나, 풍수학자 김상휘 박사는 고창 아산 반암마을이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기존에 부안 변산으로 인식되어 온 십승지의 위치 해석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반암마을은 방장산 등 산과 들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전란시 피난처로 적합하다고 본다는 주장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예언서인 <정감록 鄭鑑錄>에 언급된 '십승지(十勝地)'는 난리 나 재난(흉년, 전염병, 전쟁)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열 곳의 이상향을 뜻한다. 이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외부와 단절되기 쉽고, 농경과 자급자족이 가능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감록>은 조선의 조상인 이심(李沁)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 씨의 조상인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 저자와 정확한 저술 시기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잦은 난리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무수한 이본(異本)이 생성되었다.


당시 조선이 망한다는 내용이 있어 금서(禁書)로 되었기 때문에 몰래 필사되거나 구전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추가 또는 누락되었으며, 각 지역의 민간 신앙이나 풍수지리설이 결합되어 특정 지역이 십승지로 포함되기도 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난리를 피해 숨어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하거나 알고 있던 피난처를 십승지로 믿고 주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버전의 십승지 목록이 생겨났다. 또 십승지는 원래 특정 문제에 대한 비밀스러운 해결책을 뜻하는 '비결(秘訣)'의 개념에서 출발했으므로,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서 은밀히 전해지는 과정에서 내용이 파편화되거나 변형되었다.


열 곳이 넘는 십승지, ⓒ 전영식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십승지들은 주로 경상북도 영주/풍기, 봉화, 강원도 영월, 충청북도 보은, 전라북도 남원/운봉 등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주변 등 한반도 남부의 오지에 몰려있다. 이러한 장소들은 험준한 산세로 인해 외부와 고립되기 쉽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들이었다. 책의 이본이 많은 십승지는 열개가 넘는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정확한 위치보다는 조선시대 살기 어려웠던 민중의 피난처에 대한 염원과 이상향이 반영된 상징적인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현대말로 바꾸면 그저 마케팅스러운 책이라고나 할까.




요즘 잠시 대체 역사서 때문에 시끄러웠다.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로 풀수 없고,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만약은 역사에는 없다. 우리의 소망이자 심리적인 위안일 뿐이다. 사는게 힘들었던 시기의 흔적이 이런 류의 책들이다. <정감록>의 이본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은 그동안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일터이다. 오늘날에는 누군가 정감록을 수정하고 첨가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할수 있을까? 어쨌든 느닷없이 연구할게 많아진 학자들이 환란을 피하기에는 반암마을도 좋아 보인다.


참고문헌


1. In-Chang Ryu and Changyeol Lee, Intracontinental mantle plume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Cretaceous tectonic history of East Asia ,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 v. 479, 206-218

2. 뉴스1, 정감록 십승지는 고창 아산 반암마을이다, 2012. 1.26

3. 이승환, 오창환, Kenta Kawaguchi, 한반도를 포함한 북동아시아의 백악기 화성활동과 지구조 진화에 대한 연구, 2021.08, 지질학회지 제57권 제4호, p. 589-614

4. 황상구, 김상욱, 기원서, 김정진, 한반도 백악기 화산호의 구분과 U-Pb 저어콘 연대: 호화산 작용의 시공간적 진화, 2019. 10., 지질학회지 제55권 제5호, p. 595-619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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