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 7호선 지질 답사기
가야가 '철의 왕국'이라는 이야기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가야 유물 중에 토기와 함께 철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서진 사람인 진수(陳壽,233~297)가 280~289년 사이에 편찬한 <삼국지>의 위서(魏書) 중 동이전(줄여서 위지(魏志) 동이전이라고 한다)의 변진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한, 예, 왜인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 (낙랑과 대방의) 두 군(郡)에도 공급하였다."
변진(弁辰)은 고대 한반도 남부, 지금의 경상도 남부와 전라도 일부 지역(남해안 접경)에 위치했던 정치 집단이다. 마한(서쪽), 진한(동쪽)과 함께 삼한(三韓)을 이뤘으며, 후대에는 가야로 발전한 연맹체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변한(弁韓)'과 동일하며 '변진(弁辰)'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철 생산이 활발했던 곳으로 알려졌고, '변진 12국'으로 불리는 여러 소국 연맹체였다. 나중에 가야 연맹체로 발전된다.
하지만 성정용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야지역 제철 유적은 김해 우계리·여래리·하계리유적과 창원 봉림동 및 성산패총유적, 부산 낙민동 패총유적, 마산 현동유적 정도만 알려져 있다. 반면 신라는 경주 황성동, 밀양 사촌·임천리유적, 양산 물금유적, 울산 달천광산 등 다수의 철 관련 시설이 밝혀져 있다. 진정한 철의 왕국이 되려면 고분에서 철 관련 부장품도 중요하지만 철의 산출, 제조, 가공에 대한 시설이 밝혀져야 한다. 게다가 신라에서도 철 관련 부장품의 양과 수는 엄청나다. 신라의 제철 유적 중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울산의 달천광산이다.
달천광산은 울산철광이라고도 불리며 지금도 그 흔적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달천철장(울산 북구 달천동 1-7)이라는 이름으로 울산시에서 북구 12경 중 하나로 안내센터도 짓고 잘 꾸며놨다. 철장(鐵場)은 철광석을 캐던 광산을 말한다. 울산에서 경주로 올라가는 7번 국도 동쪽 편 700여 m 지점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1.2km에는 신라 제38대 왕인 원성왕릉(괘릉) 근처 토함산에서 발원하는 동천강이 흐른다. 경주까지는 평지로 연결된다는 말이다.
달천철장의 위치는 동래단층과 울산단층이 만나는 지점이다. 지금의 달천철장은 아파트 단지촌 한가운데인데, 해설사의 전언에 따르면 이들 아파트에는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실제로 달천철장에서 현대자동차울산 공장까지는 차로 2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달천철산은 삼한시대인 기원 전후한 시점에 처음으로 철을 채광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삼국시대 신라의 주요한 철광산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기록이 불분명하지만 이 시기에도 철의 채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전기에도 여전히 채광이 이루어졌지만, 임진왜란 이후 한동안 폐광되었다가 구충당(求忠堂) 이의립(李義立 1621~1694)에 의해 17세기에 다시 개발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철의 채취가 이루어졌지만, 토철이 바닥나면서 1993년에 폐광되었다.
1980년대에 야금학자인 윤동석, 신경환 등이 고대 철제유물을 금속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달천철제품의 비소(As) 함유율과 특이성을 밝혔다. 이에 대한 주목도는 1990년대 울산 북구 중산동 고분군 철제유물 발굴과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 조사에서 더욱 높아졌다. 이후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도 비소 성분이 검출되었다. 2004년 홍익대학교 금속공학과 박장식 교수가 논문에서 ‘현재 한국에서 비소가 포함된 철광은 달천광산뿐이기 때문에 김해에서 발굴된 비소함유 철제유물은 달천광산이 원산지’라고 밝히면서 달천광산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었다.
당시 논문에서 철의 기원을 진한 지역에 위치한 달천철장 기원으로 보았으나 그 유통에 대해서는 신라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고 당시 일반론이던 변한 가야 유통설을 따랐다. 사실 달천철산 근처에서 여러 곳의 제철 유적이 나오고, 경주 황성동 유적의 철제품에서도 비소가 검출되고, 경주신라의 마립간의 무덤에서도 철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점 등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가야만이 철의 유통 주체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경주나 김해는 거의 붙어있는 지역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가야 지역에서 철장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았고, 현재 가야의 철 관련 유적은 소규모 제철 유적이 전부인데, 철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물론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김해지역의 철장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의 역사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철의 생산은 달천임에 분명해 보인다. 대규모 제철 유적인 발견된 경주 황성동까지는 거의 평지 길이어서 물류 이점이 크고 이는 신라 무덤에서 발굴되는 다량의 철 제품과 함께 철 제품 생산에 합리적인 추측을 더해 준다.
조선 광해군 13년(1621),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에서 이의립이 태어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황과 철을 찾는데 인생을 바친 사람이고, 결국 성공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탐사하다가 38세 되던 1657년에 돌아 돌아서 울산 농소 달천에서 무쇠를 발견했다. 물론 삼한시대부터 철을 생산하던 당천철장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이의립은 처세에도 능했던 모양인데, 달천에서 생산된 철을 포함한 각종 물건을 훈련도감에 바쳤다. 이에 현종은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하사했다. 그 후 유황을 또 발견하여 1672년 비변사에 바쳤고, 숙종 때는 그의 3대에 가선대부를 증직하고 달천광산을 하사했다. 그 후 그의 13 세손인 이은건까지 이어져 1910년까지 광산을 경영했다고 한다.
달천철장이 위치한 울산 지역은 백악기 경상분지 지역으로 퇴적암이 두껍게 분포하는 지역이다. 달천철장 주변으로 가대리 화강암이라는 관입체가 존재하며 직경 12km의 콜드론(화산함몰체)이 존재한다. 이 두 경계 부분에 달천광산이 형성되어 있다. 광체는 상하가 렌즈상으로 길게 존재하는데, 지표 위에 존재하던 광체는 풍화되어 노천광산이 되었고, 이 부분에 철이 풍부해서 이 토철을 삼한시대 이후로 채광되어 사용되었던 것이다. 시가지로 조성되기 전에는 주변에 철이 산화되어 붉게 된 땅을 찾아볼 수 있다.
지질학적으로 특이하고 골치 아픈 점은 이 경계지점에 석회암이 존재하며, 초염기성암석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접촉면에서 접촉교대광상이 형성되어 다량의 자철석, 구리, 회중석 등이 산출되며 비소가 함유된 유비철석도 나온다. 또 사문석이 출토되어 한때 포항제철에서 철강제조에 쓰려고 구입해 갔다.
석회암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석회암은 얕은 해양환경에서 유기물의 퇴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달천철장에는 도무지 이러한 환경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석회석에는 유기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석회암은 울진 평해에 존재하는데, 거리는 무려 120km에 달한다. 한때 김규한 등(1990)은 동래단층과 울산단층의 작용으로 평해 근처의 고생대 석회암이 이동했을 것으로 주장했다.
아무리 지질현상이 신묘하다고 해도 이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었으며, 달천철장 주변이나 우리나라의 다른 곳에도 이러한 현상이 보고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는 주변 염기성암석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이후 양경희 등(2003)은 이 석회암의 기원을 심층 마그마에서 유래한 카보네타이트(carbonatite)라고 주장했다. 아직 완전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한 모양새이다. 광산은 폐광되고, 교수들은 은퇴했다.
한반도 남쪽의 여러 제철유적을 조사해 본 결과, 비소(As)가 들어있는 곳이 많이 발견되었다. 상대적으로 비소가 함유된 삼한시대부터 채굴된 철광산은 달천철장이 거의 유일하다. 결국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달천철장은 삼한 시대 이후 상당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철광석 생산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달천철장은 경주에서 울산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어 석탈해 전설, 경주 분황사 장육상 전설 등 각종 철 관련 전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한 전설의 충분조건인 철광석과 그 기술의 존재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질학적,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해석해 보려는 자연스러운 시도가 이어지게 된다. 달천철광의 진실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이야기들이 과학과 만나 명쾌하게 해석되는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1. 김규한, 박재경, 양종만, 요시다 나오히로, 울산철광산의 탄산염암과 사문석의 성인, 지질학회지, Vol. 26, No. 5, p.407~417, 1990
2. 김한태, 한반도 철기시대 살 찌운 2천 년 통조림, 울산연구원 울산학연구센터, 2020
3. 박장식, METALS AND MATERIALS International, Vol.10, No,3(2004), 「Estimation of the Thermal History, Usage and Age of a Korean Cast Iron Artifact」
4. 성정용, 가야지역의 철 생산과 유통 양상,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제85집, pp. 223~259, 2018
5. 양경희, 황진연, 윤성효, Peterogenesis of the Ulsa carbonate rock from the south-eastern Kyongsang Basin, South Korea, The Island Arc, Vol. 12, p.411~422, 2003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