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지난 1997년 12월 경남 거창 병원에 이모(당시 32), 조모(당시 39)씨 등이 복통·설사증세와 함께 얼굴이 붓고 얼굴과 가슴 등에 0.5㎝의 작은 혹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 캐물어보니 25일 전쯤 야생 오소리의 피와 내장, 날고기를 사이좋게 나눠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의리가 대단한 이들은 같이 먹고, 병원도 같이 입원했고, 국내 첫 선모충 환자라는 최초 기록도 공유했다. 여전히 이런 분들이 주변에 있으니 수렵금지기간(11월 초 ~2월 말)이 해제되는 봄에 우리 모두가 야생동물은 보호하고 섭취자는 잘 단속해야겠다.
의료진에 따르면 “이들이 주로 야생짐승의 피와 근육에 기생하는 선모충(트리키넬라균, Trichinella spiralis)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국내에서는 처음 발생한 환자”라고 밝혔다. 선모충이 야생 동물 고기 등을 통해 인체에 침입하면 장내에 기생하는 초기단계에는 설사와 복통 등 식중독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고 구충제 등을 통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근육과 뇌에 침투할 경우, 심한 근육통으로 치사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심장근육에 들어가 심근염 등 심장에 문제를 일으키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연사할 수도 있다. 조 모 씨는 이후 TV 뉴스 인터뷰에서 무용담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최악의 상태는 피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에 따른 조사가 펼쳐졌다. 1999년 9월부터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야생동물밀거래조사단은 환경부, 검찰과 함께 경상남도 일대의 밀렵단 단속을 시행했다. 그 결과 합천군 M교회 목사 신모(39)씨, 경남 거창군 T박제사 주인 권모(38)씨 등 5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창원지검 거창지청은 이중 4명을 자연환경보전법,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경남 남해군 M식당 주인 조모(49. 여)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고 한다.
신 씨 등은 비밀창고에 도살장까지 운영하면서 1996년부터 3천여 개의 올무를 이용, 인근 야산에서 밀렵한 오소리, 담비, 삵, 멧돼지, 고라니 등 수천 마리의 야생동물을 도끼로 밀도살해 M식당을 포함한 음식점과 건강원등에 팔아왔다고 한다.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조직적인 도살과 광범위한 판매는 상상초월이다.
M식당에서 압수한 외상장부에는 부군수, 교육장, 군청직원, 농협직원, 전문대학장, 면장, 군의원 등 지도층 인사 2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단다. 다들 밀렵이 불법이란 것을 알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K-밀렵은 은밀하고 치밀했으며, K-보신문화는 계층을 뛰어넘고,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것 같다.
스파르가눔(Sparganum) 기생충 감염은 주로 야생 오소리의 고기나 간을 생식하거나 덜 익혀 먹었을 때 발생하는 심각한 다른 종류의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만손열두조충(Spirometra)의 유충이 원인이며, 인체 내에서 뇌, 근육, 피하조직 등 다양한 부위로 이동하며 질환을 일으킨다.
야생 오소리, 뱀, 개구리 등이 중간 숙주이며, 오소리 육회, 간 등 감염된 육류를 생식할 때 유충이 인체로 들어온다. 유충이 혈류를 통해 뇌, 눈, 근육 등 전신으로 이동하며, 뇌에 침투하면 뇌종양과 유사한 증상(심한 두통, 구토, 발작, 편마비, 감각 이상 등, 뇌 스파르가눔증)을 일으킬 수 있다. 감염 후 수주에서 수년(최대 3년 이상)까지 긴 잠복기를 가질 수 있다. 피부 아래에 이동하는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통증, 부종이 발생할 수 있다.
혈청 효소면역측정법(ELISA)을 통해 기생충 특이 항체를 확인하거나, MRI/CT 영상 검사로 병변을 확인한다. 유충이 살아 움직이며 조직을 파괴하므로, 외과적 수술을 통해 기생충을 직접 제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다. 가장 중요한 예방책은 생으로 야생 오소리 및 뱀, 개구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유충은 열에 약하므로, 70°C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죽는다. 하지만 호사가는 결코 삶아 먹지 않는다. 오소리 고기 섭취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마비, 어지럼증, 저림 등 신경학적 증상이나 피부 밑에 덩어리가 나타나면 원기가 북돋아진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즉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오소리는 족제빗과 동물인 오소리는 기생충 말고도, 코로나19 계열 바이러스나 결핵 등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다양한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어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 변종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2020년 덴마크 밍크 도살 사건(Danish mink Cullen)이 바로 그 사례이다. 코로나19, 사스(SARS), 메르스(MERS), 에볼라, 에이즈 등은 모두 야생동물로부터 유래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된 사건들이다.
오소리는 족제비과의 동물로 야행성이며 주로 새, 뱀, 개구리, 지렁이, 곤충 및 과일, 나무뿌리, 다람쥐, 청설모 등의 설치류, 토끼 등을 잡아먹는 잡식동물이다. 다른 족제비과 동물처럼 전투력이 상당하다. 머리도 좋고 위생관념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소리 쓸개가 몸에 좋다는 낭설이 돌아 2026년 1월 1일부터 사육이 금지되는 반달가슴곰 대신 눈길을 받고 있다. 오소리 피를 마시고 생간과 쓸개를 기름소금에 찍어먹어 보았다고 전해지는 프로야구 선수 선동열에 따르면 '그렇게 비위가 상하는 역한 음식은 처음'이라고 했다. 드시고 싶은가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부, 2024년 기타 가축통계를 보면 오소리의 사육두수는 꾸준히 줄어들어왔다. 2005년 대비 86%가 감소해서 전국에 1,021마리가 사육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숫자가 진짜일지는 의문이다. 국내 오소리 농장에서 사육되는 개체와 농장은 줄고 있지만, 이러한 합법적 유통 경로가 오히려 야생 오소리 밀렵 제품을 합법화하는 '세탁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 시중에는 오소리 기름으로 만든 화장품과 화장붓 등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다른 주목을 끄는 동물에 비해 오소리 농장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전염병 위험과 생태계 파괴 측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는 "한국의 오소리 농장은 인수공통전염병의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농장에서 탈출하거나 풀려난 오소리가 야생종에 질병 확산을 촉진하고, 야생 동물 개체군에 인수공통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 개별 오소리 농장에서 농민들이 손수 오소리를 도축하고 있어 위생에 대한 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곤경에 처한 야생동물을 살려주고 팔자 핀 이야기는 많다. 반대로 야생동물을 잡아먹고 신세 망치거나 인생 종친 사람들 이야기는 적다. 야생동물을 잡아먹어도 별문제 없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잡아먹은 사람들의 운명이 좋지 않아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성공하거나 살아남은 데이터(사례)에만 집중하고, 실패하거나 사라진 데이터를 간과하여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한 사례일까. 무슨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들고 다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적발되면 보건당국이 특별 관리되고 격리수용(?)되어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기생충을 섭취 후 10~15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싸지 않은 금액으로 뱀, 오소리, 청둥오리, 고라니 등을 먹는 분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은밀하게 숨어 활약 중이다.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단속해야 할까? 아무튼 어릴 때나 나이 먹어서나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된다.
참고문헌
Joshua Elves-Powell, Xavier Neo, Sehee Park, Rosie Woodroffe, Hang Lee, Jan C. Axmacher, Sarah M. Durant, A preliminary assessment of the wildlife trade in badgers (Meles leucurus and Arctonyx spp.) (Carnivora: Mustelidae) in South Korea, Journal of Asia-Pacific Biodiversity
Volume 16, Issue 2, 1 June 2023, Pages 204-214, https://doi.org/10.1016/j.japb.2023.03.004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