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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Aug 15. 2023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밤

드라마 '악귀' 를 시작했다. 귀신이 자주 나오고 그러진 않지만, 보면서 중간중간 섬뜩하고 소름끼치곤 했다. 평소에도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나인데, 김은희 작가에 김태리, 오정세 배우의 콜라보는 봐줘야 인지상정. 무서워서 그만보고 싶어도 자꾸만 보고싶어졌다. 마치 마약처럼.




그림자 귀신이 자꾸만 생각났다. 섬뜩하게 바뀌는 구산영의 얼굴과 악귀 목소리도.


어젯밤, 남편이 당직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다. 여자 셋이 자려고 누웠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등골부터 머리끝까지 오-싹.


현관에 나가 마구 어질러진 신발을 정리하고 중문을 제대로 닫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고 자면 너무 더워서 여름엔 방문을 열어놓고 자는데, 안방에 누우면 현관이 바로 보이는 구조다. 센서등이 꺼져 깜깜한 현관이 계속 신경쓰였다. 아무도 없는데 또 센서등이 켜지면 어떡하지. 우리집에 귀신이? 오-싹.


그 와중에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엄마, 왜?"

"엄마, 잠이 안 와."

"안 자고 싶은데."


"아유, 시끄러워. 그만 말하고 얼른 눈 감아."


언제 무서웠냐는 듯, 아이들은 나를 금세 현실로 돌려놓았다. 귀신이 나온다면 "네가 애들 좀 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혼자였다면 무서워서 어떻게 잤을까. 이 경험 덕에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좋은 점을 하나 더 발견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한, 무서움에 몸서리칠 일은 없을 거라는 것. 남편이 없는 밤이었지만, 보들보들 포동포동한 아이들 살을 부비며 무서운 건 다 잊고 푹 잤다. 무서웠지만 무섭지 않아서 감사했던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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