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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Oct 18. 2023

거실 TV 없애기 1. 엄마 마음 준비부터

결혼하면서 혼수로 TV를 사지 않았다. TV 없는 집에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했다. 


아이를 낳고 TV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동의했다. 영상 매체에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이 좀 더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적막한 가운데 아이만 보고 있는 게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라디오를 찾아 틀어보았지만 그래도 외로웠다. TV를 보고 싶었다. 아기 말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위해 참자, 참자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친정 집에 안 보고 보관만 하고 있는 40인치 TV를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가 아닌 엄마의 TV 사랑이. 




TV 이모는 그 어떤 베이비시터보다도 가성비가 좋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아이가 TV에 빠져드는 사이 나는 엄마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밥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서 오래 볼 일을 볼 수 있었으며, 핸드폰으로 단절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등원 준비 시간에, 밥 먹는 시간에 나는 TV 이모를 불렀다.


이렇게 TV를 보게 된 게 첫째는 15개월쯤부터인가 그랬는데, 둘째는 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되었다. 언제부턴가 둘째는 집에서 '테레비쟁이'로 불렸다. 틈만 나면 "엄마, 테레비 틀어줘." 가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구, 요 테레비쟁이!" 라고 놀리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거실에 TV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한결 수월해지면서 TV 이모가 간절했던 마음도 많이 사그라들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TV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와 바로 보이는 게 TV이니, 아이는 아침 댓바람부터 TV를 틀어달라고 졸라댔다. 이 나이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을텐데 그 시간을 TV에 빼앗기는 것만 같았다. 




박혜란 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을 읽으며 거실에 TV를 없애고 큰 테이블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글쓰기 방에서 실배 님의 가족독서모임 강의를 들으며 그 생각이 더욱 커졌다. 그러다 최근 최은아 님의 『자발적 방관육아』를 읽으면서 거실 TV 없애기를 실천에 옮겼다.


첫째는 4세 겨울부터 스스로 한글을 깨우쳐 혼자 책을 읽기도 하고, 심심할 땐 그림을 그리고, 숨은그림찾기를 만든다. 아이들은 영상 속 세계보다 진짜 세상을 탐구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책을 통해 진짜 세상을 느끼고 알아가는 재미를 아는 아이로 커나가고 있다. 바로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말이다.

최은아, 『자발적 방관육아』,p21


사실 나도 어렸을 때 '테레비쟁이' 였다. 밥 먹을 때 TV는 반찬과도 같았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나오는 아침 8시와 오후 5시가 제일 좋았다. 그런데 우리 어릴 때는 지금처럼 무제한으로 TV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TV는 마음껏 틀 수 있었지만 어린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방송국 편성팀에서 해주었던 TV 제한을, 이제는 부모가 해줘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엄마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인 엄마 마음이 드디어 실천에까지 다다랐다. 과연 남들이 말했던 것만큼 거실에 TV를 없앤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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