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주어졌을 때 철저하게
#20241107 #설거지 #철저하게 #기회
설거지를 다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던 순간이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프라이팬 하나가 보였다. J가 물까지 부어 놓고 갔으니까 씻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상큼하게 손도 다 닦은 상태였기에, 다시 손에 물 묻히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프라이팬은 J에게 미루려고 했다. 근데 좀 더 생각해 보니 뭘 또 시키나 싶고, 수행자라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법문이 떠오르면서 지난 법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난 법회에서는 기계 간의 접촉 불량으로 회원분들께서 법문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분명 법회 전에 테스트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법회 중에 그런 일이 생겨서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되었다. 이 일 덕분에 ‘수행자는 뭐든 철저하게 해야 한다’라는 법문을 들었다.
오늘 나는 설거지를 하겠다고 마음을 냈고, 그렇다면 남은 프라이팬 하나까지 설거지하는 게 완벽하게 마음 낸 바를 다하는 거였다. 근데 ‘에이, 뭐 하나쯤이야’ 하면서 그걸 J에게 넘기려고 했다니. 잘못됐다 싶었다.
그리고 법회 중에 그런 사달이 나서, 부장님께서 급하게 당신 노트북을 갖고 나오셔서 연결하고 다시 깔끔하게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미 하고 있는데 이제야 준비가 다 되어도 소용이 없었고, 이미 버스는 떠난 상태였다. 부장님께서는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마음이 엄청 무거우셨던 거 같고, 한숨도 한두 번 정도 쉬시는 게 들렸다. 버스가 떠나면 땡이고,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 수도 있는데. 한 번 왔을 때 제대로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설거지하는 데에는 5분도 안 걸렸던 거 같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내가 이 세상에 온 게 흔한 기회가 아닐 텐데.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나이까지 잘 자라고, 불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매우 어려운 일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방일한가? 그런 법문을 해주고 싶으셨던 걸까 하는 생각을 내 멋대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