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20260319 #머리 #인연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랐다. 또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다. 사실 자를 때는 지났다. 병원에 다녀오고, 조리원에 있으면서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주말을 틈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원래 가던 미용실에 가려고 했다. 거기는 남자 머리 전문점이고 커트가 만삼천 원밖에 안 한다. 적당히 말해도 적당히 잘라줘서 편하게 다닌다.
미용실을 갔을 때의 시간이 오후 4시 반.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장님은 손님의 머리를 감기고 있었고, 3명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기다릴 시간은 없었고, 다음 주로 미루기도 싫어서 옆의 다른 미용실로 가야 했다. 거긴 커트가 만천 원인데, 예전에 한 번 가고 더 안 갔다. 가격도 더 싼데 왜 안 갔지?
이유는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곧 알게 되었다. 여기 사장님은 들어갈 때부터 심드렁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TV는 골프 프로를 켜놓고, 컴퓨터로도 골프 스윙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에, 사장님이 쉬는 걸 내가 방해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리에 앉으라기에 앉았다. 나는 머리 자르러 가면 으레 ‘짧고 단정하게’ 해 달라고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자른 지는 1달이 넘었고, 그냥 짧고 단정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근데 이 사장님은 뭐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내가 머리도 덥수룩하고 수염도 안 깎아서 폐인으로 보였는지) 지금 자른 지 1달 된 게 문제가 아니라고, 머리 자른 지 얼마만큼 지났는지 묻는 건 1달 동안 길어진 만큼만 자르기 때문이라고, 자주 오거나 단골이면 알아서 잘라주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는 말에 살짝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나는 사장님의 태도에 화가 났다.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왜 나한테 짜증을? 역시 돈 벌기가 싫은 건가? 가운을 벗고 나가겠다고 해야 하나? 뭐 어쩌라는 거지? 근데 오늘 안 자르면 머리가 너무 길어서 불편할 거 같은데?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수많은 생각들이 올라왔지만, 이미 앉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해결하고 싶었다.
올라오는 마음을 꾹 참았다. 어떻게 할까? 예전에 J가 마음에 들어 했던 머리가 있어서 사진을 보여주고 비슷하게 잘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면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리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그러라고 했다. 사진 중에서 단정한 머리를 찾아서 이렇게 잘라주시면 될 거 같다고 했다. 사장님은 사진을 보더니 ‘이러면 옆머리가 9mm도 안 되는 거 같은데….’라며 혼잣말을 하더니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드니 손짓 하나에도 신경이 쓰인다. 뒷머리를 자른다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손길도 왠지 거친 거 같고…. 하지만 나는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냥 하는 대로 맡길 뿐이었다.
눈을 감고 뜨거운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러니 손님이 없지. 손님이 없을 때 손님이 오면 반기는 척이라도 해야지, 돈 벌려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나. 아쉬운 게 없는 게 혹시 취미로 가게를 하시는 건가. 그냥 다른 날 자를 걸 그랬나. 들고 있는 가위로 내 목을 찌르면 어떡하지. 만천 원짜리 서비스라 생각하자. 더 많은 걸 바란 내 잘못이다. 등등….
그러다가 예전에 들었던 인연(因緣)과 관련된 법문이 떠올랐다. 이 사장님과 나의 인연은 어떤 인연일까? 피차 좋은 감정으로 부딪힌 것은 아니니 일단 선연(善緣)은 아니겠고. 악연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내가 이 악연을 좋은 길로 이끌 방편이나 지혜나 힘이 있던가? 없다. 그렇다면 일단 참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괜히 조언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사장님은 더욱 화를 내고 악연은 더욱 깊어지리라.
자비관(慈悲觀)에 대한 법문도 떠올랐다. 상대한테 피를 뿜으려면 내 입에 피를 머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먼저 고통스러워야 남을 괴롭힐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비록 사장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은 아니었고,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장님이 뭔가 괴로우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만일 그렇다면 사장님 마음은 무엇 때문에 괴로웠으며,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또 생각했다. 만약 내가 법문을 듣지 않았다면, 이러한 인연을 만났을 때 울분과 화로 휩싸여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에 저 사장님과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모습으로 만나서 비슷하거나 더 심한 정도의 감정을 주고받겠지. 마침 법문을 들은 걸 떠올렸고, 생각을 돌릴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짧고 단정하게’라는 말이 두루뭉술하긴 하다. 요샛말로 ‘알잘딱깔센’ 해달라는 거네. 좀 무책임한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는 애매하게 얘기하면 짜증이 날 법도 하지 싶었다.
여기 미용실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에 샴푸는 셀프다. 샴푸를 하고 나니 내 머리카락과 물로 주변이 지저분해졌다.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 다 쓴 수건으로 물을 쓸어내고 머리카락을 치웠다. 정신과학에서는 이걸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하겠지. 근데 반동 형성이면 어떤가?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행동을 뒤집어서 생각과 마음까지 뒤집을 수 있다면 그거로 된 것 아닌가.
한결 가벼운 머리로 미용실을 나섰다. 덥수룩한 머리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면 느끼지 못했을 상쾌함이다.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뒤집어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면서 내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니 마음도 가벼웠다. 이렇게 작은 심산(心山) 하나를 넘었다.
* 명심보감(明心寶鑑) 5. 正己篇(정기편)
太公曰(태공왈)
欲量他人 先須自量 (욕량타인 선수자량)
傷人之語 還是自傷 (상인지어 환시자상)
含血噴人 先汚其口 (함혈분인 선오기구)
태공이 말하였다.
“타인을 헤아리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를 반드시 헤아려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니,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기의 입이 더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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